“이번엔 내가… 다음엔 당신이…”충남교육감 차기 선거 밀약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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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환(姜福煥) 충남도 교육감이 2000년 7월 교육감선거 결선투표 지지를 부탁하며 이병학 충남도 교육위원(47·구속)에게 써주었다는 ‘각서’에는 인사권 위임 내용뿐 아니라 재정(예산) 협의와 차기선거 지지를 약속하는 ‘밀약’까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8일 “강 교육감이 당시 이 위원에게 써 준 각서(복사본)에는 ‘인사권 위임 외에도 (이 지역) 제반 재정에 관해 협의를 하겠다. 또 4년 단임만 하고 다음에 이 위원이 교육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이 위원이 각서를 이용해 인사 외에도 교육청의 예산 편성과 집행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위원에게 2000만원을 주고 천안교육장에 임명된 사실이 드러나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모씨(64) 외에 H씨도 돈을 주고 모 군의 교육장에 임명됐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H씨와 도 교육청 초등 인사담당 전현직 간부 2명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검찰은 또 이 위원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계좌추적에도 나서는 한편 인사 청탁자를 이 위원에게 연결해준 것으로 알려진 현모씨(전 초등학교 교장)를 수배하고 출국금지조치했다. 강 교육감은 8일 각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그는 이날 오전 보령시의 한 초등학교 다목적교실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천안=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교육계 매관매직 실태▼

‘지역 교육장이 되려면 2000만∼3000만원, 지역 교육청 학무과장은 1000만∼2000만원….’

대전지검 천안지청이 교육장 인사 알선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학 충남도 교육위원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에는 이 같은 ‘관직 정가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 떠도는 ‘교장 1000만원, 교감 500만원’이라는 이른바 ‘장천감오(長千監五)’에 이어 교육계의 뇌물실태를 드러낸 대목이다. 교육위원이 교육감을 뽑던 시절에는 ‘후보 사퇴 비용이 5000만원’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위원은 2000년 7월 교육감 선거에서 현재 교육감인 강복환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천안 아산 연기 지역 인사권 위임 각서를 건네받았다. 이어 평소 친분이 있던 현모씨(60·전 초등학교 교장)를 통해 청탁자를 물색했다.

9월 인사에서 자리가 빌 천안 아산 연기 교육장과 학생회관장 자리가 대상이었다.

현 전 교장은 우선 당시 중학교 교장이던 이모씨(64)를 찾아가 “교육장 나가려면 2000만∼3000만원이 들고 학무과장은 1000만∼2000만원 든다”며 ‘가격표’를 제시했다. 이 교장은 2000만원을 주고 천안교육장에 임명됐다.

이 위원은 지인(知人)에게도 에누리가 없었다. 그는 결국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돈을 되돌려주기는 했지만 “남편을 학무과장에 앉히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현씨의 부인 강모씨로부터 그해 8월과 2001년 2월 현금 1100만원과 갈비 한 세트를 받았다.

또 다른 간부 H씨는 현씨로부터 “교육장에 나가려면 이병학 위원에게 줄을 대라. 후원금으로 2000만원만 내면 된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러한 인사 개입 과정에서 이 위원은 ‘충남 서북부 교육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교장급 인사는 “이 위원이 술에 취해 ‘○○○는 어디로 인사이동된다’고 하면 그대로 맞아 떨어지곤 했다”며 “그는 각서 사본을 보여주며 청탁을 유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충남도의 경우는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교육계의 엽관실태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교육감이 직접 매관매직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김영세(金榮世) 전 충북도교육감은 1996년부터 2000년 7월까지 김모 교육장(60)과 이모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65)으로부터 인사 청탁 등의 대가로 2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2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거에서의 지지와 매관매직에는 ‘차기 출마 지지’와 ‘차기 불출마 약속’ 같은 별도의 밀약(密約)도 따라 붙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위원은 이 전 천안교육장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것 외에도 ‘교육장 임용을 대가로 돈을 건넸다는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 ‘퇴임 후 교육위원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두 장을 받아낸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서울 K고등학교 교장은 “교육계에서 이런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소위 ‘자리’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일부 교육자들의 몰상식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위 김홍열(金洪烈) 부의장은 “인사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확립해 교육감의 절대적인 인사 영향력을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안=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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