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거래소 첫직상장 벤처기업 최충렬 유엔젤사장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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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카고’라는 뮤지컬 영화를 봤는데 왠지 약이 오르더군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멋진 작품으로 큰 돈을 벌었잖아요. 다음날 회사 임원들을 불러놓고 ‘바로 이거다. 투자 규모는 작지만 알차고 섹시한 시카고 같은 기업을 만들자’고 말했죠.” 유엔젤의 최충렬(崔忠烈·42) 사장은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을 영화 ‘시카고’에 비유했다. “대작인 ‘벤허’ 같은 영화는 만들지도 않을 거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무선 인터넷 솔루션 업체인 유엔젤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스타’로 떠오른 기업. 코스닥을 거치지 않고 거래소에 직상장된 최초의 벤처기업이다. 회사 설립 4년 만에 매출액 185억원에 59억원의 순이익을 기반으로 까다로운 상장심사 기준을 통과했다.》

공모주 청약 당시 812 대 1의 경쟁률로 투자자를 끌어 모은 뒤 1일 상장 이후 4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8일에는 9.21% 떨어진 4만7300원에 마감돼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벤처업계의 ‘시카고’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유엔젤의 이런 성공을 두고 주변에서는 “가난한 시골 소년의 힘겨운 상경기가 드디어 결실을 봤다”고 말한다.

“가난이 그저 불편한 것이라고요? 아니에요. 가난은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죄악입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돈이 있었어야 말이죠…. 돈을 벌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사업을 꿈꿨어요.”

그는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한국항공대에 진학했고 졸업한 뒤 90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에 입사했다. 경영기획실에서 통신접속료 산정 방안 등 통신정책을 연구하면서 기술뿐 아니라 경제 분야의 지식도 쌓아 나갔다. 그는 “모든 것이 창업의 준비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최 사장이 본격적인 창업에 나선 것은 ‘때가 왔다’고 느낀 99년 7월. 회사 이름은 ‘멀리서 들려오는 천사의 복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정했다.

“목사인 장인어른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어휴∼ 당시에는 욕도 많이 먹었어요. 벤처 거품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회사 이름에 ‘테크’나 ‘닷컴’만 들어가도 돈을 버는데, 유엔젤은 너무 진부하다는 이유였죠. 그래도 브랜드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신경 안 써요.”

때로는 농담을 섞어가며 40대 최고경영자(CEO)답지 않게 익살맞은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의 눈매는 매서웠다. 실제 유엔젤의 급성장은 그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 크게 힘입었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을 퇴사할 당시 그가 팀장을 맡고 있던 지능망팀의 직원 11명이 전부 사표를 쓰고 그를 따라 나온 것은 그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핵심 연구원이 차세대 사업 개발에만 주력할 수 있도록 1년간 현업에서 빼내주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진행 중인 중요 사업에 차질이 생긴다”며 난색을 표하는 담당 부서장에게 “비명횡사했다고 여기고 무조건 빼라”며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는 2001년도 ‘몽골 거머리 사건’. 몽골에서 무선 메시지서비스(SMS) 센터 건립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최 사장은 무조건 몽골로 들어갔다. 그러나 하루 전 이미 다른 국내업체가 계약을 끝낸 상태. 밤새 울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낸 뒤 이틀 동안 몽골 관계자들을 붙들고 늘어졌다. 수십 잔의 보드카를 곁들인 최 사장의 집요한 설득에 몽골측은 2차 사업권을 유엔젤로 넘겼다. 이렇게 처음 6억원 규모로 시작한 이 사업은 이제 2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모든 일은, 특히 사업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엮어가지 않았더라면 유엔젤이 4년 만에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흔히 벤처기업은 기술만 뛰어나면 성공할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위법만 아니라면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죠. 사실 동원할 학연이나 지연도 없지만요, 허허.”

그는 사업상의 인연은 물론 직원들을 챙기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추석에는 직원들은 물론 그 부모에게까지 선물과 감사 편지를 보냈다. 직원들에게는 매년 1주일씩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휴가와 200만원의 경비를 지원해준다.

특유의 친화력에 세세한 관심까지 쏟는 사장인지라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지난해 8월 만학(晩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CD라도 한 장씩 사서 축하 좀 해주라”는 그의 농담에 전 직원 95명이 모두 CD를 한 장씩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유엔젤의 상장으로 148만주의 주식을 보유한 최 사장은 700억원대 신흥 부자의 대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회사 및 주식과 죽을 때까지 함께 갈 것이므로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투자자들도 생각해야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들도 회사의 가족이니까 책임을 져야죠. 마치 골고다의 십자가라도 진 기분이에요.”

그는 “유엔젤이 거래소에 999번째로 상장된 회사로서의 의미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000 빼기 1’ 번째 기업, 즉 십진법의 숫자 1000과 이진법의 숫자 1이 상징하듯 전통기업과 첨단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였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최충렬 사장은 ▼

-1961년 경기 여주 출생

-1984년 한국항공대 졸업

-1990년 한국항공대 대학원 졸업,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입사

-1999년 SK텔레콤 선임연구원으로 퇴사, 유엔젤 창업

-2002년 한국항공대 박사학위 취득

-2003년 유엔젤 거래소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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