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인사가 만사라는데…

  • 입력 2003년 7월 8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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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나를 좀 내버려 달라.”

박맹우(朴孟雨) 울산시장이 한달 전인 6월 월례조회에서 시청 직원들에게 이같은 하소연을 했다. 한달 뒤 있을 정기인사에서 인사 청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되레 ‘청탁’을 한 것.

자리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던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누가 시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을까”라는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연한 인사 부조리를 차단하려는 시장의 강력한 의지’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울산시의 인사 총괄부서(내무국장) 출신인 박 시장이 ‘공평하고 업무 수행능력이 있는 사람이 우대받는 공직사회가 돼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이번에는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흐른 7일. 서기관급 이상 35명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한 공무원은 “후임자 발령이 일주일간 지연돼 업무차질을 빚으며 심사숙고했다는 인사 치고는 낙제나 다름없다”고 혹평했다.

공무원 사이에 가장 기피부서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대중교통과와 기업지원과의 과장이 각각 상수도사업본부 경영부장과 울주군 국장으로 영전하는 등 격무부서의 장(長)을 배려한 것은 그런대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총무 인사 기획 감사 등 소위 ‘끗발있는 지원부서’의 사무관들은 모두 서기관으로 승진해 ‘격무·현장 부서 발탁’을 천명해온 박 시장의 말은 설득력을 잃었다.

행정직과 전문직이 함께 맡을 수 있는 복수직급인 건설행정과장과 대중교통과장 기업지원과장 등은 이번에도 모두 행정직 사무관이 승진 임용돼 ‘전문직 홀대’가 여전했다.

개방형 직위로 바꿔 공개 모집된 보건환경연구원장에는 박 시장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가 시로부터 정식 발령도 나기 전에 보건소장직에서 사표를 내고 취임준비를 해 경합자들로부터 ‘담합인사’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날마다 현장을 누비며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공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능력위주의 발탁인사를 단행하겠다”던 박 시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묵묵히 일해온 대다수 공무원들은 이번 인사를 보고 어깨가 더 축 처진다고 말한다.

앞으로 이어질 사무관 승진 등의 후속인사에서는 이들의 어깨를 추스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울산에서>

정재락 사회1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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