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윤석호PD 드라마 '여름향기'에 담긴 영상의 의미는

  • 입력 2003년 7월 7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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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마술사’ 윤석호 PD가 이번엔 눈이 시리도록 짙은 녹음을 들고 나왔다. 7일 첫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여름향기’는 ‘가을동화’ ‘겨울연가’에 이은 윤 PD의 계절 연작 3번째다.

심장이 약한 혜원(손예진)이 교통 사고로 숨진 은혜(신애)의 심장을 이식받은 뒤 은혜의 애인이었던 민우(송승헌)와 마주칠 때마다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불가능한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다.

윤 PD의 미장센(Mise-en Scene·화면구성)은 이같은 남녀 사랑의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치밀하게 꾸며진다. ‘여름향기’에서 그는 녹음에 묻힌 남녀 주인공을 익스트림 롱샷(Extreme Long Shot·매우 먼 거리에서 넓은 배경을 잡음)으로 담아 ‘동화같은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윤 PD는 이런 미장센을 ‘당의정’이라고 말한다. 치열하고 운명적인 사랑도 자연이라는 당의로 감싸면 아름답고 아릿하게 순치(順治)된다고 한다. 주인공 송승헌과 손예진은 ‘착한 눈빛’을 갖고 있어 이런 배경과 ‘동거’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윤 PD는 지난 1년간 전북 부안의 채석강, 고창 선운사, 전남 보성의 녹차 밭, 강원 오대산을 돌며 “머릿속 이미지 방에다가 장소를 저장”했다. 그리고는 시나리오를 뜯어 고쳤다. 늘 장소가 이야기보다 먼저다. ‘여름향기’의 그림같은 영상 속에 윤 PD가 숨겨놓은 미적 장치들을 들여다봤다.

평창=이승재기자 sjda@donga.com


○1 익스트림 롱샷=3회. “그때 참 고마웠어요.”(혜원) “뭘요.”(민우) “빚진 거 갚고 싶었어요.”(혜원) “나도… 그거 받아내고 싶더라고요. 한번은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민우) 윤 PD는 커다란 녹음 속에 아주 작은 크기로 주인공 남녀를 담아 회화적인 즐거움을 도모한다. ‘자연 속 아담과 이브’의 순수 이미지. 이런 화면은 이야기의 전개를 한템포 이완시킨다. 화면이 바뀌면 갑자기 슬픈 여자의 눈빛을 클로즈업하는 등 극도로 대조된 카메라 기법으로 시청자들의 긴장과 감정 몰입을 유발한다. 전남 보성의 녹차밭. 초록 속에서 층위가 다른 또 다른 초록을 대비시켜 색조의 ‘변주’를 담았다. 길은 두 남녀가 운명적으로 한 길을 갈 수 밖에 없음을 상징한다.

○2 여우비=1회. “호랑이가 장가 가나? 아니면 여우가 시집가는 건가?”(혜원) 여우비를 피하는 나무 밑. 은혜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은혜는 민우에게 같은 말을 했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비는 센티멘털하다. 그러나 해가 있을 때 오는 비는 투명하고 화려하다. 사랑은 여우비와 같다. 사랑은 대부분 아프다. 사랑 속 행복은 여우비처럼 아주 잠깐 왔다 가는 존재가 아닌지…. 그래서 혜원과 민우가 운명적 사랑을 느낄 때면 여우비가 내린다. 밭두렁 사이로 난 길을 통해 오대산 노인봉 초입까지 강우기와 크레인을 트럭에 싣고 올라가 촬영했다.

○3 꽃=3회. “차가 좀 말썽을 부리나봐요. 정아가 갔어요.”(민우) “네….”(혜원) 서양의 경우 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꽃은 인간미와 정감을 부각시킨다. 바늘꽃과 창포를 카메라 바로 앞에 놓고 녹음을 풀샷(전체가 보일 만큼 멀리 잡음)으로 잡았다. 오후 5시의 역광을 이용, 렌즈의 초점을 꽃이 아닌 녹음에 맞추면 꽃의 모습이 뭉개지면서 붉은 색조만 부각돼 녹음과 대비된다. 강원 평창군 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촬영.

○4 머리카락=2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이렇게 망치다니.”(은혜) “슈베르튼 건 알았어?”(민우)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그래도 민우씨, 나는 슈베르트처럼 슬픈 사랑은 하지 않을래.”(은혜) 대학 소강당에서 민우와 은혜의 아름다웠던 시절. 은혜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다. 그의 심장을 받은 혜원은 긴 머리에 굵은 웨이브를 줬다. 묶지 않은 긴 머리는 순수하고 로맨틱한 느낌과 신비감을 준다. 은혜의 머리카락은 역광으로 촬영, 그 사이를 비집고 쏟아져 나오는 햇빛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빛은 비련의 주인공 은혜가 주는 순수의 아우라(aura·유일무이한 존재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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