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월드]새차 뽑았다고 잘난척…10년 愛馬, 마누라 같아

  • 입력 2003년 7월 7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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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클럽 동호회
코파클럽 동호회
《운전자라면 누구나 새 차를 사면 가슴이 뛴다. 운전석에 앉아 눈을 감고 플라스틱과 가죽 냄새가 섞인 새 차 특유의 향에 취해 뿌듯해한다. 이것저것 장치를 조작해보고 도로에 나가서 달려보기도 하며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진다. 처음 만나 연애를 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그런데 차가 오래되면 어떻게 되나. 성능이야 어찌 새 차에 비하랴. 아무리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고 해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오래된 차에는 새 차가 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쌓인 정이 사람 못지않다. 10년씩 함께했다면 차는 그저 ‘물건’이 아니다. 여기 오래된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최신 유럽 스타일, ‘르망’=기자가 대우자동차의 르망을 처음 만난 건 80년대 후반 서울 상계동 운전면허 시험장이었다. 당시 르망은 현대 엑셀, 프레스토와 함께 코스 시험에 쓰이던 공식 차량이었다. 벌써 15, 16년 전의 일.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르망은 차차 잊혀져가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모였다. 그것도 1100명씩이나. 모임 이름도 ‘르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르사모’(cafe.daum.net/rsamo/)다.

르사모 전국모임

86년 처음 생산된 르망은 현대차의 엑셀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수출시대를 연 주역으로 97년 단종될 때까지 국내에서 103만대가량이 팔린 인기 모델이다.

각진 디자인과 침침한 무채색 계열의 비슷비슷한 차량들이 거리를 수놓던 시절. 독일 오펠사의 카데트를 바탕으로 만든 르망은 유럽 스타일의 유선형 차체로 소형 승용차 시장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연한 붉은 빛이 도는 장미색 컬러를 도입한 것도 실험적이었다.

‘르사모’ 회원들의 차는 평균 10년, 주행거리는 10만km 이상이다.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놈은 88년식. 무려 28만km를 달리고도 여전히 씽씽 달린다고 한다.

회원 관리를 맡고 있는 홍천균씨(29)는 “얼마 전 한 회원의 결혼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를 태우고 10여대의 르망이 한 줄로 공항까지 줄지어 달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의 차는 93년식 르망 GTi다.

르망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모델이다. 그래서 동호회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차를 출연시켜달라는 제안도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오프로드의 자존심 ‘코란도 패밀리’=인터넷 ‘코란도 패밀리’ 동호회 ‘코파클럽’(cafe.daum.net/kofaclub/) 회장인 안성수씨(26). 그와 코란도 패밀리의 인연은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 철원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코란도 패밀리로 운전에 처음 눈떴다.

그의 아버지는 차를 바꿀 때마다 코란도 패밀리를 고집했다. 89년과 93년, 96년 세 번에 걸쳐 같은 모델을 구입했던 것이다. 96년에 구입한 모델은 지금 아들 차지가 됐다.

88년 등장한 코란도 패밀리는 8년만인 96년에 단종됐다. 벌써 7년이 지났지만 안씨나 그의 아버지처럼 골수 팬들이 많다. 인터넷 코파클럽 회원만 해도 1300여명에 이른다.

쌍용자동차가 ‘F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한 차량이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 좋은 4륜 구동 차량이라는데 70, 80년대에 다니던 좁고 불편한 지프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2238cc 디젤 엔진을 달고 5명이 타고 짐을 실을 수 있도록 공간이 넉넉했다. 그렇다고 일반 승용차로 보기도 어려웠다. 이 모델이 바로 ‘코란도 패밀리’다.

바야흐로 자동차가 레저의 수단이 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코란도 패밀리는 국내에 선보인 첫 레저용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Sports Utility Vehicle)이다.

88년 11월 판매에 들어간 코란도 패밀리는 첫날 278대라는 기록적인 계약고를 올렸다. 당시 SUV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

2001년부터 동호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씨는 “새 부품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회원들끼리 서로 상의해가며 중고 부품을 구하고 차를 고친다. 이들은 코란도 패밀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비가 좋고 튼튼하다는 게 그 이유다.

오프로드를 달리는 모임을 자주 갖기 때문에 회원들의 차량 가운데 주행거리 50만km를 넘긴 것도 많다고.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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