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마(γ)선 쬐면 나도 ‘헐크’로?…영화는 과장 현실선 불가능

  • 입력 2003년 7월 6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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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녹색의 야수로 변하는 ‘헐크’가 지난주 영화로 돌아왔다. 70년대 후반 인기 TV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헐크는 실험실 사고로 다량의 감마선에 노출된 뒤 분노하면 녹색의 거인으로 변해 악당을 물리친다.

‘감마선을 맞아 엄청난 힘을 갖게 된’ 헐크는 영화뿐만 아니라 자동차 속에도 숨어 있다. 자동차 엔진 주위에는 전선이 많이 있다. 이 전선이 감마선을 쬔 ‘헐크 전선’이다. 일반 고무 전선은 섭씨 70도만 돼도 노글노글하게 변한다. 자동차 엔진 부근은 100도가 넘어 위험하다. 그러나 감마선을 쬔 전선은 140도가 넘어도 튼튼하게 잘 견딘다.

집에서 쓰는 다리미 전선이나 TV 속 전선도 감마선을 쬐어 열에 잘 견디게 만들었다. 이런 전선을 ‘내열성 전선’이라고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변명우 박사는 “미국에서는 감마선을 쬐어 더 단단하게 만든 ‘헐크 골프공’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 공은 드라이브를 칠 때 7∼10% 더 멀리 날아간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쓰는 1회용 주사기나 링거관, 화상용 거즈도 방사선을 쬔 ‘헐크 제품’이다. 이들은 힘이 세어지는 대신 깨끗해진다. 감마선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파괴해 멸균시킨 것이다.

영화에서는 감마선이 괴물을 만들지만 실생활에서는 감마선이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

최근 암치료 장비로 인기를 끄는 것이 ‘감마나이프’다. 감마선을 마치 칼(나이프)처럼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감마나이프는 특히 뇌종양 수술에 효과가 크다. 감마선을 머릿속의 종양 부위에 쬐어 암세포를 파괴하는데 두개골을 열지 않아도 되고 피를 흘리지도 않는다. 암세포는 감마선에 민감해 정상세포보다 더 빨리 파괴된다. 감마나이프는 뇌혈관 질환,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쓰인다.

앞으로 공항에서도 감마선이 많이 쓰일 전망이다.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이 가방이나 컨테이너 속을 뒤져 무기나 폭탄을 잘 찾아내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 공항에서는 이미 감마선 검사기가 쓰이고 있다. 감마선을 막으려면 특수 콘크리트로 60cm의 벽을 쌓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2001년 고려대 한국검출기연구소가 감마선 검사기를 만든 바 있다.

감마선은 우주에서도 나온다. 빅뱅 이후 우주 최대의 폭발로 불리는 현상이 바로 ‘감마선 폭발’이다. 100억 개의 태양이 일생 동안 내는 에너지를 0.1∼100초 동안 한꺼번에 뿜어내는 엄청난 폭발현상이다. 1960년대 미 국방부가 소련의 핵무기 실험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박사는 “감마선 폭발이 극초신성이나 블랙홀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이 감마선을 맞고 헐크로 변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다. 치사량 이상의 감마선을 맞으면 사람은 죽거나 암에 걸릴 뿐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 유전적 변이 약물을 몸에 넣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람의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고 엄청난 힘까지 갖게 하는 유전자가 생기는 것은 아무리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불가능하다. 녹색의 거인 대신 기껏해야 몸 어딘가에 녹색 점이 생길 뿐이다.

다만 영화 속 감마선 장치는 실제로 미국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 있는 ‘진짜’를 모델로 만들었다. 과학잡지 ‘네이처’에 따르면 영화제작팀은 몇 번이나 이 연구소를 방문해 실제 장치와 똑같은 모조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리안 감독이 영화에 ‘진짜 과학’을 넣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이 장치는 감마선 발생 장치가 아니라 감마선 검출기이기 때문에 폭발한다 해도 감마선이 누출돼 사람을 헐크로 만드는 일은 없다고 한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투과력 X선보다 강해▼

영화 주인공인 평범한 과학자 브루스 배너 박사를 헐크로 만든 것은 감마선이다. 감마(γ)선은 원자핵이 핵반응을 일으킬 때 나오는 방사선의 하나다. 알파(α)선, 베타(β)선이 대표적인 방사선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조남진 교수(원자력공학과)는 “감마선은 주로 원자핵이 깨지거나 중성자를 흡수해 에너지 준위가 변할 때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방사선 중에서도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감마선은 투과력이 X선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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