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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야구의 꿈 접은 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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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야구의 꿈 접은 조성민

입력 2003-07-06 14:56수정 2009-10-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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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좀 합시다."

"그러죠. 뭐. 앞으로 신문에 이름 나올 일 없을 것 같은데…."

언론 접촉을 꺼리는 조성민(30)과의 인터뷰 약속은 의외로 쉽게 잡혔다.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 다음날인 1일 서울 도곡동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내 야구인생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한번쯤 인터뷰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라며 기자를 환대했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조성민의 야구인생을 정리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차분하게 과거를 되짚어 나갔다.

◇삼총사+박찬호

신일고 시절 그는 이른바 '빅3'중 한명이었다. 3학년때인 91년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 2관왕을 이끈 조성민을 포함해 휘문고의 임선동(현대), 경기고의 손경수(전 두산)가 투수 '빅3'였다. 공주고의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는 공은 빨랐지만 이들보다 한수 아래로 평가됐다.

"당시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했던 투수는 선동이었어요. 그야말로 초고교급 선수였죠. 직구와 슬라이더가 정말 예술이었어요. 난 야구를 하면서 '내가 항상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임선동만은 라이벌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박찬호에 대해 물어보자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교 때는 사실 친했어요. 서로 전화도 자주 하고…. 찬호가 한양대 들어가서도 그런 관계가 유지됐는데 결정적으로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찬호가 LA다저스에 입단하고 출국하는 날까지도 내게 다저스에 가게 됐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했어요. 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찬호는 아니었나봐요."

◇아! 부상,부상,부상…,

95년 일본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조성민은 98년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나갔다 하면 완투에 완봉. 최고시속 149㎞의 강속구에 포크볼, 싱커가 위력적이었다. 그는 전반기에만 7승(6패)을 따내며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7월23일 롯데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운명의 올스타전. "그해 5월말부터 팔이 안 좋았어요. 전반기에 완투승이 6번이었고 이 가운데 완봉승이 세 차례였어요. 무리를 한 셈이죠."

그 후유증이 바로 올스타전에서 나타났다. "마지막 1이닝을 책임지기로 했어요. 그런데 나가서 타자를 삼진으로 잡을 때 직구를 던진 다음에 뭔가 팔에서 '뚝'하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하필이면 9회말 우리 팀이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에 또 마운드에 올라가야 했어요."

조성민은 연장 10회초 첫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했으나 이때 또다시 팔이 뒤틀렸다. 다음타자는 스트레이트 볼넷. 센트럴리그 올스타의 투수코치역할을 한 곤도감독(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더 못던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곤도감독이 내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 척 하더라구요. 속셈은 뻔했죠. 우리 팀엔 다음 투수가 사사키(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현 시애틀 매리너스)밖에 없었는데 자기 투수를 아끼고 싶었던 거죠."

조성민은 이미 인대가 끊어져 버린 팔을 갖고 또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직구시속이 110㎞안팎에 그쳤다. 망신창이가 된 팔에서 스피드가 나올 리 없었다.

그는 그해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지겨운 재활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꿈치 인대이식수술, 웃자란 뼈 제거수술 등 두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고 재활과 경기출전을 반복했다.

"수술 뒤 몇 번 경기에 나갔는데 그 때마다 소염제를 먹고 마운드에 올랐어요. 훈련할 때도 소염제를 먹었죠. 아플까봐 두려웠습니다. 한 2년 정도는 거의 매일 소염제를 먹었던 것 같아요."

◇나의 사랑, 나의 야구.

조성민은 지난해 10월 요미우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요미우리의 은근한 차별이 싫었고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그는 "미국에 가서 즐겁게 야구를 하고 싶다. 다시는 일본에 오지 않겠다. 내보내 달라"고 요미우리측을 설득했었다.

하지만 아내(최진실)와의 불화 등 복잡한 집안일이 터졌고 3월에 둘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미국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려는 계획도 무산됐다.

국내에서라도 야구를 하고 싶었다. 4월29일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신청을 한 것도 그 때문. 하지만 1차지명권을 갖고 있는 두산과 LG가 외면했다. 그는 6월30일 2차 드래프트를 하루 앞두고 스스로 드래프트신청을 철회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어요. 2차지명을 앞두고 현대와 LG가 관심을 가졌지만 적극적이진 않았어요. '이것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2차지명에서 끄트머리에 지명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는 최근 요미우리측에 의사타진을 다시 해봤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지금 당장 어느 정도 던질 수 있는 지 보여달라"고 했다. 훈련도 제대로 안 한 상태에서 당장 볼을 제대로 뿌릴 자신이 없었다. 이마저 포기했다.

"앞으로 뭘 할거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코치나 감독이 돼 가르치는 것 말고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모아 선진야구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일종의 야구클리닉이 될 수도 있겠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복잡한 집안일은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유명 연예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궁금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야구선수였던 조성민에 대해서만 알고 싶었다.

▼조성민은...▼

▽생년월일=1973년 4월5일

▽출신교=둔촌초등학교-신일중-신일고-고려대

▽키, 몸무게=1m95, 101㎏

▽야구시작=초등학교 4학년 때,

▽절친한 친구=고려대 동기인 김종국(기아) 손 혁, 홍원기(이상 두산)

▽가족사항=아내 최진실씨와 1남 1녀(3세된 아들 환희와 4개월된 딸 수민)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요경력

95년 10월 계약금 1억5000만엔, 연봉 1200만엔에 8년계약으로 입단

98년 7월 올스타전 부상

99년 팔꿈치 인대이식 수술, 2001년 웃자란 팔꿈치 뼈 제거수술

2002년 10월 요미우리 퇴단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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