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대북송금 위법 묵인 “인정해줄 수밖에…”

  • 입력 2003년 7월 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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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대북 송금의 불법성을 사전에 보고받고도 사실상 이를 묵인한 사실이 ‘대북 송금 의혹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기록에서 밝혀졌다.

또 북한은 현대에서 5억달러를 송금받기 위해 29개의 해외 비밀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 취재팀이 4일 입수한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 원장, 이기호(李起浩·구속)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근영(李瑾榮·구속) 전 산업은행 총재,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 박상배(朴相培) 전 산업은행 관리본부장 등 이 사건 관련자 20여명의 진술조서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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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전 원장은 특검팀 조사에서 “2000년 5월 초 박지원(朴智元·구속) 전 문화관광부 장관, 이 전 수석 등과 함께 대통령께 5억달러 대북 송금의 실정법상 문제점 등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임 전 원장은 “이에 대통령은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는 특검팀이 지난달 25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이 위법행위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D은행과 J무역상사, H사 등 북한 정부가 6개 기업 및 은행 명의로 해외에 개설한 29개 비밀계좌로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이처럼 많은 계좌를 활용한 배경에 궁금증을 낳고 있다. 북한이 계좌를 개설한 외국은행은 중국은행과 영국 홍콩상하이은행, 일본 아시카가은행 등 3개다.

북한은 송금에 앞서 아태평화위원회 재정담당 인사를 통해 2000년 5월 23∼25일 금강산 부두 기공식에 참석한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에게 ‘돈자리(계좌)’ 번호가 적힌 A4용지 7장을 서류봉투에 담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이사회 사장은 수사기록에서 “정 회장이 북측에 ‘자금 마련이 어려우니 정상회담 이후에 송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북측이 ‘정상회담 전에 송금해야 정상회담에 차질이 없다’며 송금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정부와 현대가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무리하게 대북 송금을 강행한 배경에는 북한의 선납 요구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 총재는 진술서에서 “현대상선은 무리한 대북 송금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자동차운반선을 매각하면서 핵심 사업을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대북 송금을 위한 산은의 불법대출을 알고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눈감아준 것으로 수사기록에서 밝혀졌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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