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런 대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맹자가 많았던 시절 군 막사에선 병사들의 편지대필이 성행했다. 다른 사람이 대필해준 것이라도 입대한 아들의 안부편지는 고향의 부모를 얼마든지 울렸고, 단심(丹心)을 언약한 애인의 연애편지는 처녀 가슴을 얼마든지 뛰게 만들었다. 그 시절엔 관공서 주변에 대서소도 참 많았다. 그곳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종합민원소였다. 돋보기를 낀 대서소 아저씨의 달필은 글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필 논쟁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적도 있었다. 1991년 5월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한 한 재야단체 간부의 유서 때문이었다. 그 유서가 고인이 작성한 게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어둠의 배후세력’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학생 노동자 가정주부의 분신이 10여건이나 잇따라 한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외치기도 했던 끔찍한 시기였다.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 끝에 고인의 한 친구를 유서대필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자살방조죄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대필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총선이 멀지 않은 만큼 또 정치인들의 홍보용 서적 출간 러시가 예상된다. 워낙 바쁘신 몸들이라 역시 대필에 의존하기 십상일 것이다. 대신 읽는 대독(代讀)도 흔한 정치판이라 대신 쓰는 대필쯤이야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요즘은 대입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나 학위논문까지 대필로 작성해 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우리 사회를 가히 ‘대필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아무리 그래도 서예대전까지 대필로 얼룩진 것은 너무 심하다. 예술까지 속임수가 끼어들어서야 더 믿을 데가 없다.
임 채 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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