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20>불화를 가져오지 않는 말

  • 입력 2003년 7월 4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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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성불하시고 처음으로 가르친 것이 이른바 ‘네 가지 진리(사제·四諦)와 여덟 겹의 바른 길’(팔정도·八正道)이라는 것이다. 네 가지 진리를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하는데, 삶이란 괴로움이라는 것,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는 것, 집착을 끊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따라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바로 ‘여덟 겹의 바른 길’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여덟 겹의 바른 길이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직업(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집중(正念), 바른 삼매(正定)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가르침이야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이지만 요즈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중에서도 ‘바른말’이다.

바른말이란 거짓이 없이 진실한 말, 시의적절한 말, 경우에 합당한 말,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는 말 등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불화를 가져오지 않는 말’이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에 분란이 생긴다면 그 말은 ‘바른말’일 수가 없다고 하는 해석이다.

결국 어느 말이 바르냐, 바르지 못하냐를 판가름하는 최종 기준은 그 말 때문에 우리 주위에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생기는가, 불화와 반목의 싸늘함이 조장되는가 하는 데 달렸다는 뜻이다.

물론 불화를 가져오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해서 비판적(critical)이기를 그만두라는 뜻은 아니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성숙하고 창조적인 사회일 수가 없다. 부처님 스스로도 우리에게 무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다만 비판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이에 평화와 화해의 다리를 건설하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데 앞장서는 종교인은 물론 말의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나 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도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우리 주위에 더 큰 평화와 화해가 찾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까.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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