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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인류학과 탈식민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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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인류학과 탈식민지화'

입력 2003-07-04 17:21수정 2009-10-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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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탈식민지화(人類學と脫植民地化)/오타 요시노부(太田好信) 지음/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

흔히 인류학은 연구자들이 비서양의 ‘전근대적’ 사회에서 장기간 현지 조사를 하고 그 사회 사람들의 행위 습관 신앙 사회관계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또 인류학은 모든 문화는 동등하다고 하는 문화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서구 중심적 지식에 비판을 가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연구 주체인 인류학자와 연구 대상인 토착민 사이에는 엄연한 단절이 존재한다. 사실상 지금까지 ‘네이티브’라고 불려온 토착민들은 인류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은 최근 들어 스스로 새로운 ‘주체’가 되어 자기 사회를 분석 변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작업은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는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이며 이것이야말로 ‘탈식민지화’의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인류학이 이 ‘탈식민지화’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이는 살아 있는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기도 하다.

오타는 주로 중남미의 과테말라와 일본의 오키나와(沖繩)를 조사지로 하고 있는 인류학자다. 이 책에서는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과테말라의 선주민(先住民) 여성, 리고베르타 멘추를 다뤘다. 과테말라의 선주민들은 일체의 정치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고 침묵만을 강요당했지만 멘추는 그 중압을 부수고 ‘마야인’으로서의 주장을 당당하게 외쳤다. 당연히 멘추에게는 여러 방면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멘추와 같은 정치운동가는 진짜 ‘네이티브’가 아니며, 따라서 ‘마야인’을 대표할 권리도 없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빗나간 비판을 저자는 ‘진정(眞正)함의 담론’이라고 부른다. 즉, 외부에서 멋대로 어떤 대상에 스테레오 타입을 부여한 다음, 그 스테레오 타입에 적합한 것만을 ‘진정한’ 것으로 보는 담론이다. ‘탈식민지화’란 식민지의 정치적 독립에 의해서 종결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피억압자로서 침묵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이 밖에서 붙인 ‘진정함의 담론’을 깨뜨리고 자신의 위치에서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테말라에서는 1996년까지 36년간에 걸친 내전이 계속됐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전반 사이에만도 정부군에 의해 20만명 이상의 선주민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저자는 이 비참한 과거를 직시해야만 과테말라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서 획득한 ‘마야인’의 정체성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주체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주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마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야말로 과테말라의 ‘탈식민지화’가 달성되는 날이 될 것이다.

오타는 과테말라를 주로 연구하지만 동아시아에서의 ‘탈식민지화’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로 그는 ‘아시아의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역사적 타자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이 성실한 인류학자의 저서에서 아시아의 ‘탈식민지화’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를 받을 수 있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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