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이종호/山의 주인은 나무와 새

  • 입력 2003년 7월 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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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오랜만에 동네 뒷산의 약수터를 찾았다. 요즘 불경기로 서민들의 걱정과 주름살은 늘어 가는데 산의 녹음은 날로 짙어만 간다. 자연은 철따라 초연히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문득 우리네 삶도 너무 요란하거나 심각하게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높이를 낮추고 욕심을 최대한 줄이면 어려울 것도 없겠다. 오늘처럼 여유 있는 마음으로 천천히 산길을 걷듯이 하면 말이다.

그런데 산책로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전에 없던 팻말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거기에는 ‘출입금지, 이곳은 산책로가 아님, 개인 소유임-주인 백’이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비싼 돈 들여 흉물스러운 철조망을 쳐놓은 것으로도 부족했나 보다. 땅 가진 죄(?)로 사용도 못하면서 남들 좋은 일만 시켜주자니 얼마나 고민스러웠겠는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 곳은 개인 소유이지만 즐겁게 이용하세요’라고 써놨으면 얼마나 고맙고 좋겠는가.

얼마쯤 더 가니 딱따구리가 나무 둥치를 파고 집을 짓느라 부리로 부지런히 쪼아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꿩 소리, 산새 소리 또한 아름답게 들려온다.

그럴 즈음 갑자기 어디선가 “야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릴레이식으로 계속된다. 사람이 입을 다물면 자연이 말을 한다는데…. 일부 철없는 사람들이 산에 와서 습관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자 한다. 이 때문에 동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번식과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산에 와서 주인처럼 행세하며 큰소리치는 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만큼이나 잘못된 일이다.

산의 주인은 누구인가. 등기상의 소유주도 아니고 등산객이나 방문객도 아니다. 산에서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나무, 새, 다람쥐들이다. 사람은 그저 관리인이거나,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손님으로 와서 주인에게 피해를 주면 되겠는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고, 고마운 마음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면 사람에게 벌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종호 ‘21세기산악회’ 산악대장 서울 노원구 공릉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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