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김창원/'어깨' 판치는 재개발 수주전

  • 입력 2003년 7월 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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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마포문화체육센터.

프로야구장을 방불케 하는 때 아닌 응원전이 벌어졌다. 응원부대가 30여m 줄지어 만든 ‘인간 터널’을 지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주민들은 예상치 않은 ‘환대’에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다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곳은 마포 공덕5구역 재개발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한 총회 현장.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형 건설업체 A사와 B사가 재개발 시공권을 놓고 한판 붙는 날이다.

하지만 축제분위기로 시작한 총회 현장은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등장하면서 돌변했다. 이들은 ‘원만한’ 총회 진행을 위해 두 회사가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들로 이른바 ‘어깨’들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A사가 동원한 ‘어깨’들이 B사에 우호적인 조합원의 총회장 입장을 가로막고 나서면서부터였다. 시공사 선정 투표에서 A사에 불리한 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을 미리 단속하고 나선 것이다.

“정당한 투표를 왜 막느냐”는 조합원들의 항의와 ‘어깨’간의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굳게 잠긴 총회장의 출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또 한 차례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총회장 안에 ‘안전하게’ 들어갔던 조합원들이 실려 나온 것. 역시 A사에 불리한 발언을 하는 이른바 ‘비토 조합원’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이다.

경찰마저 ‘어깨’들의 완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급히 출동한 경찰은 정식 조합원의 입장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온갖 욕설과 비방, 몸싸움이 뒤범벅된 무법천지 앞에 공권력이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재개발 수주전에는 보통 수십억원의 홍보비용이 든다. 수주전에서 떨어지면 이 돈은 고스란히 날아가는 셈이다. 또 두 회사의 라이벌 의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건설사라면 결과 못지않게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건설사들은 상반기 재건축 재개발 수주실적을 알리기 위한 보도자료를 쏟아낸다. A사도 최근 ‘화려한 성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수주 실적 가운데 일부라도 ‘어깨 동원’을 통해 이뤄졌다면 진심으로 축하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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