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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주말시대]30代 '해리 포터가 나를 지배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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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주말시대]30代 '해리 포터가 나를 지배하는 이유'

입력 2003-07-03 17:05수정 2009-10-1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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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았을까요?' '잊혀진 것에 대한 설렘 아닐까요?' 왼쪽부터 임성균 신혜리 윤선아씨.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지난달 21일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해리 포터 5탄 ‘불사조 기사단’이 화제를 뿌리며 발간됐다. 번역판이 아직 나오지 않은 국내에서도 영어판은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재고가 없어 못 팔 지경”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해리 포터가 지배하는 이유’라는 커버스토리를 게재하며 인기비결을 “아이들이 해리 포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이들뿐일까?

국내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출판하는 ‘문학수첩’ 측은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에서 해리 포터 독자 수는 아이들보다 성인이 더 많다”고 밝혔다.

어른들도 해리 포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해리 포터를 읽으며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빼놓지 않고 탐독해온 30대 독자 3명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문학수첩’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해리 포터가 나를 지배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리 포터의 매력

유선아(35·여·주한영국문화원 교육담당 매니저·기혼·자녀 없음)

신혜리(34·여·주부·초등 3년 아들, 유치원생 딸)

임성균(33·한국휴렛팩커드 대리·기혼·자녀 없음)

●해리 포터의 매력

유선아(이하 유)=아동문학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착한 캐릭터와 나쁜 캐릭터가 구별되는데 해리 포터는 그렇지 않아요. 1탄 ‘마법사의 돌’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퀴렐 교수가 처음에는 선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아닌 걸로 되잖아요.

신혜리(이하 신)=퀴렐 교수는 욕심 때문에 악마와 거래한 거죠. 사람 자체는 심약해요.

유=이런 반전이 성인과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인들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요?

임성균(이하 임)=그래서인지 처음 접했을 때 권선징악의 뻔한 스토리이면서도 동화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어요.

신=요즘 판타지나 만화의 캐릭터들을 보면 악인도 어렸을 때 상처를 받은,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되잖아요. 오히려 더 매력적일 때도 있고요.

임=같은 판타지인 ‘반지의 제왕’은 인간세상하고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해리 포터는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것도 매력이지요.

신=KBS 2TV의 ‘개그콘서트’에 보면 “나가 있어”를 외치는 세바스찬이라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그걸 보면 말포이의 캐릭터를 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임=해리는 특혜 받은 사람도 아니고 교육 받으면서 실수도 많이 하며 성장하죠.

신=기존 판타지 동화들은 날 때부터 영웅인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잖아요. 또 공식처럼 여자는 아주 예뻐야 하고요. 그에 비해 헤르미온느는 튀어나온 앞니를 고민하는 평범한 아이지만 아주 똑똑하죠.

임=저도 헤르미온느를 좋아해요. 행동만 앞서는 남성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지혜로운 이미지잖아요. 요즘 딸 가진 부모들이 바라는 자녀상 같아요.

유=매력적인 캐릭터는 스네이프 교수예요.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겉으로는 냉소적이고 그러면서도 뒤로는 해리를 도와주고, 감동적이지 않아요?

신=우리 아버지들처럼 말이죠, 내색하지는 않지만 자식들 모르게 걱정하고 돌봐주시는.

●30대가 해리 포터를 읽는다는 것

임=주변 성인들이 의외로 많이 읽었어요. 나 같은 사람은 없겠지 했는데 말이죠. 추리소설처럼 읽었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유=저는 주위에서 하도 “해리 포터, 해리 포터” 해서 봤어요. 처음에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대학생이나 읽는 줄 알았지요. 아이들 보는 것까지 굳이 봐야 되나 했는데 읽어보니 제가 봐도 재미있더라고요.

신=초등학교 다니는 아들한테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샀어요. 며칠 전에 ‘설마 읽었겠어. 영화나 봤겠지’생각하곤 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미 다 읽었어” 그러더라고요.

임=오히려 아이들이 책보다는 영화로 많이 본 것 같아요.

신=결혼하고 아이 낳고 생활에 치이잖아요. 그런 제게도 해리 포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아요.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작은 마법이죠.

임=어렵지 않으니까 거부감도 덜 들면서 책을 읽는다는 만족감도 얻을 수 있어요.

유=‘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하며 받는 감동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긴 해요. 해리가 승리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궁금한 거죠.

임=읽다 보면 여행하면서 여정을 만끽하는 기분이 들어요. 생각을 하게 만들죠.

신=요소요소에 복선도 깔리고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 토론에 나오면서 할 일도 많은 30대 중에 누가 해리 포터를 읽을까 궁금했어요.

유=10권이나 되는 책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는 읽기 힘들잖아요. 직장에 다니다 보면 주말에 머리 쓰는 TV 퀴즈 프로그램도 보기 싫거든요. 그런데 해리 포터는 현실을 떠나 잠시 넋을 놓게 한다고나 할까요. 걱정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신=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흉내 내거나 상업적 코드가 노골적으로 담긴 아동문학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조앤 K 롤링은 일곱살짜리 딸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찾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가 다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잊었던 피터팬을 생각하다

임=저는 가끔 해리 포터가 되고 싶어요. 현대판 피터팬이죠. 호그와트는 네버랜드고. 반복되는 일상, 조직의 나사 노릇에 무기력함을 느끼죠. 일탈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좀 튀고 싶은 욕망 같은 것 말이에요.

신=그러나 30대가 되면 상상도 어렵게 돼요. 해리 포터와 동일시 하기에 30대는 너무 커버렸죠.

임=20대는 저 너머에 있는 것이 뭘까 궁금해서 어서어서 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뭔지 충분히 알아버렸죠, 30대는.

유=저는 30대가 되어 마음이 편했어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는 20대보다는 30대가 돼서 내가 할 일을 알게 되니 여유가 생겼어요.

신=해리 포터를 읽는 것도 결국 과거의 그 설렘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요. 20대는 뭔지 모르고 열에 들떠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30대는 적어도 내가 뭘 해야 하는가를 알고 내가 주도해서 선택을 하게 돼요.

유=해리 포터가 호그와트에서 기숙사 배정을 받을 때 마법의 모자가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사이에서 갈등을 하잖아요. 해리 포터는 나중에 덤블도어 교장과 이야기 하면서 ‘결국 마법의 모자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는 걸 알게 되죠.

임=우리가 어렸을 때 해리 포터와 같은 TV 드라마나 동화가 있었다면 뭐였을까요?

신=남녀 두 어린이 주인공이 두 팔을 엑스자로 겹치면서 초능력을 만들어내던 TV 드라마 ‘별똥기동대’…그런 거 아닐까요? 4차원 세계로 공간이동을 하면서 모르던 곳으로 가고.

유=맞아요. 손창민씨하고 강수연씨가 어렸을 때 나왔죠. ‘엑스기동대’ 아니었던가요? 극중에서 햇빛을 반사할 수 있는 큰 도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면이 유리로 된 큰 건물을 지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남산 하얏트 호텔이더라고요.

신=그때나 지금이나 마법에 대한 동경은 똑같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가 쌍둥이라면 하나는 나가 놀고 하나는 공부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많거든요.

유=투명망토 얘기를 읽었을 때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었던 건데 롤링도 이런 생각을 했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임=예전 기억이 이렇게 남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 작품들이 그리운 걸까요, 아니면 그때가 그리운 걸까요.

신=크면서 환상, 바람 그런 걸 잊어버리잖아요. 나이 들어서 까먹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잊으면서 사는 거죠. 우리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것들을 해리 포터가 건드린 것은 아닐까요.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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