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노무현과 김대중

  • 입력 2003년 7월 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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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과 해양수산부 장관, 새천년민주당의 창당 총재와 대통령후보, 15대 대통령과 16대 대통령. 기록에 나타난 두 사람의 관계는 흔한 인연이 아니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두 사람의 지향점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때그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맺어질 수 없는 기묘한 연대다. 이런저런 설명은 빼고, 그랬던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 대단히 불편하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나서지만 않았을 뿐, 싸움이다. 주류는 노 대통령을, 비주류는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신당 정국이 요동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DJ와 선을 그을 건가 ▼

반 년째 계속되는 민주당 내 신당 공방은 대치상황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노 대통령은 대선 후 정치개혁에 쏠린 당시 분위기를 살려, 민주당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신당 창당을 원하는 것 같다. 판갈이식 신당에 초점을 맞춰 열세를 무릅쓰고라도 유권자의 동정심을 끌어낸다면 총선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이젠 민주당의 불편한 셋집 생활이 싫을 법도 하다. 역대로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새 집을 짓던 것이 집권 정당사다. 그것이 단절로 점철된 한국형 ‘중시조 정치’요, 정권마다 ‘대통령당’이 등장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신당에 대한 비주류의 저항은 DJ가 나설 정도로 완강하다. 한때 열세인 듯했으나 이젠 ‘다 죽은 비주류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나온다. 구당(救黨) 명분으로 민주당의 역사적 내력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비주류의 내심엔 ‘어느 당 후보로, 누구의 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느냐’ 하는 감정의 응어리가 깔려 있다.

막바지로 치닫는 대리전은 과연 노 대통령이 DJ와 선을 긋느냐에 따라 양상도 치열해질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아직 명확히 선을 긋지 않고 있으며 주류가 통합신당의 문을 아직 비주류측에 열어 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현실적 정치 환경엔 선긋기를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도 있다. DJ정권의 대북송금조사 특검법안을 수용했던 대통령은 두 달여가 지난 후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변한 것이다. 왜 대통령의 마음이 흔들렸겠는가.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던 호남표가 DJ와 선긋기에 반발해 내년 총선에서 돌아선다면 큰 타격이다. 실제로 주류 몇몇 의원은 선긋기에 앞장선 까닭에 총선 전망이 암울해져 전전긍긍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통령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갈라설 땐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니 ‘통합신당’이란 비빔밥식의 모호한 이름이 나온 것 아닌가. ‘3김정치 종식’을 부르짖지만 잔영(殘影)이 얼마나 길고 두껍게 드리워져 있는가를 실감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3김정치는 청산되기는커녕 엄존했다. 노 대통령은 그 수혜자일지언정 피해자는 아니지 않은가.

대리전은 신당 창당 작업에서 큰 기복을 겪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신생 정당이 살아남으려면 강한 결집력의 인적 구성과 자금력을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공천을 받으면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다는 높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념적 깃발 달랑 들고 모였다 해서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력을 발휘하는 3김정치의 원천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신당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신당과 실리의 갈림길 ▼

이제 핵심은 대통령의 선택이다. 신당 창당과 총선 실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신당 열망도 강하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대통령은 알고 있다. 민주당과 신당이 분리돼 총선을 치를 경우, 한나라당이 어부지리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판의 일반론이다.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지만 운신이 편치 않다. ‘제왕적 대통령’을 경계한다며 ‘당정 분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신당에서 손 떼라’는 일성처럼, 발 벗고 나선다면 만만치 않을 안팎의 비판도 큰 부담이다.

한솥밥을 먹던 전 현직 대통령 사이의 대리전이라니, 기막힌 곡절이 아닌가. 양측 사연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우리 편 만들고 공천권 챙기는, 지난날 정치의 되풀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왜 싸우는가. 그런 꼴 보라고 시작한 대리전인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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