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브람스 '비의 노래 소나타'

  • 입력 2003년 7월 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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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엔 무슨 음악을 들을까. 비를 노래한 가요와 팝송은 대충 꼽아보아도 수십곡이나 된다. 그러나 비를 그린 고전음악 작품은 언뜻 머리에 떠올리기 힘들다. 음악의 본고장이면서 유난히 날씨가 궂은 독일에서 ‘비’란 워낙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몇 안 되는 ‘비 클래식’ 중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가 있다. “떨어지거라, 빗방울이여,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일깨워 다오….” 브람스는 45세(1878) 때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의 3악장에서 이 노래의 선율을 다시 사용했다. 이 ‘비의 노래 소나타’는 그의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인 3번만큼 음악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인기는 가장 높다. 제목 있는 작품에 끌리는 대중의 정서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반면 원곡인 가곡 ‘비의 노래’가 잘 불려지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물기’ 있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은 3악장 때문이지만 피아노 왼손의 가만가만한 울림으로 시작되는 첫 악장부터 고적한 소리의 물기가 듣는 이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피아노는 지나치게 앞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군데군데 결정적인 표정을 만들어준다. 한음 한음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점착성(粘着性) 있는 여운을 가진 피아노의 음색이 비의 느낌과도 잘 맞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는 화창한 날에도 잘 어울리는데 뭘!”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체코의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요세프 수크는 1967년 데카사에서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카첸과 브람스의 소나타 3곡 모두를 녹음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연주로, 다소 템포를 빠르게 당겨 밀어붙이듯 한 것이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녹음이 다소 건조해 풍요한 여운을 살리지 못한 것이 단점. 수크는 30년 뒤인 97년에도 로토스 레이블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스코다와 같은 곡을 녹음했는데 이 음반은 EMI사가 판권을 사들여 발매하고 있다. 밀어붙이는 템포는 같지만 30년 전의 ‘소박미’ 대신 양감이 살아난 현의 음색이 튼실하니 듣기 좋다.

최근 음반으로는 올해 25세인 그루지야의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자베트 바티아슈빌리와 피아니스트 밀라나 체르냐프스카의 협연음반(2000)이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고 지성적인 소리와 강약 및 템포 설계를 펼쳐나가고 있다. EMI ‘데뷔’시리즈 중 하나로 발매됐는데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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