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경고의 소리는 惡意?

  • 입력 2003년 7월 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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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 서울대 국가경쟁력연구센터 주최로 ‘한국의 국가경쟁력,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대학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 등 쟁쟁한 토론자들이 나왔다.

토론자로 동참한 이종오(李鍾旿)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지적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기업이 좋아야 일자리가 늘어 실업률이 줄고 세수(稅收)가 늘어 복지도 가능하다”며 “기업을 망치고 노동을 잘되게 하려는 것은 무식한 소리”라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현 정부가 ‘친(親)노동’이라고 하면서 ‘반(反)기업’이라는 뉘앙스를 주는데 이는 악의적이고 무식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다른 발표자나 토론자는 대부분 현재의 경제 및 노사관계를 우울하게 진단했다. 몇 부분을 옮겨보자.

“이대로 가다가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커녕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지금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파업하기 좋은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보다 더한 위기상황이다.”

심포지엄이 끝난 뒤 기자는 몇몇 토론자에게 이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지 거꾸로 가고 있는지는 당사자인 기업인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990년대에 경제 분야를 취재한 기자들은 거의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를 제때 경고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다.

당시에도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지만 정부의 ‘펀더멘털 타령’에 묻혀버렸다. 결과적으로 경제기자들은 정부의 ‘공허한 주장’을 국민에게 전달해 피해를 보게 한 일말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 기자는 외환위기 후 서울역 앞 노숙자 행렬과 ‘눈물의 비디오’에 등장한 퇴직 은행원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한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철도파업에 대한 원칙있는 대응 등에서 보여준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 및 노동정책 변화 조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고위인사들이 ‘위기의 경고음’을 알리는 각계의 걱정을 ‘악의적이고 무식한 표현’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 외환위기와 같은 큰 실수는 한번이면 족하다.

김광현 경제부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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