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작가-번역가들의 '우리아이, 이런책 읽혔다' 좌담회

  • 입력 2003년 7월 1일 16시 26분


코멘트
▼김장성(39·사계절출판사 그림책팀장)작가, 대표작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노경실(45·주니어김영사 편집인)작가, 대표작 '상계동아이들'▼김경연(47·풀빛 기획위원)번역가, 역서 '행복한 청소부'▼최윤정(45·물구나무 주간)번역가, 비평서 '책 밖의 어른,책 속의 아이' 박영대기자sannae@donga.com
▼김장성(39·사계절출판사 그림책팀장)작가, 대표작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
▼노경실(45·주니어김영사 편집인)작가, 대표작 '상계동아이들'
▼김경연(47·풀빛 기획위원)번역가, 역서 '행복한 청소부'
▼최윤정(45·물구나무 주간)번역가, 비평서 '책 밖의 어른,책 속의 아이' 박영대기자sannae@donga.com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기저기 독서운동단체에서 추천도서들이 쏟아져 나올 때다. 그런데 막상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나 번역가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까? 아니, 책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작가나 번역가 출신 편집자 4명이 모여 ‘우리아이, 이런 책 읽혔다’란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먼저 아이들에게 읽힌(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 10권의 목록을 부탁했다.》

김장성=열한살짜리 큰애가 중학생이 되면 ‘파브르식물기’를 읽히고 싶어요. 당장 권하고 싶은 책은 ‘일하는 아이들’입니다. 같은 또래지만 다른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감수성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요. 책을 읽어주기 시작할 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좋았어요.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주었습니다.

노경실=로알드 달의 작품들과 빤스맨 시리즈를 권하고 싶어요. 특히 빤스맨 시리즈는 아이들은 열광하지만 엄마들이 사주지 않으려고 하는 책들이에요. 그러나 ‘마틸다’나 빤스맨시리즈에서 약자인 아이들은 음모 복수 반격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최윤정=우리나라 아동문학이 여성취향인 데다 감상적이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많이 얘기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작은아들애가 책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나 초등 3학년 때 ‘나쁜 어린이표’와 ‘아기도깨비와 오토제국’은 다 읽었어요. 아이들의 심리묘사에 빠져든 것이지요. 그걸 보고 독서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경연=큰애가 고2인데 그 애가 어렸을 때 지금처럼 아동문학책이 활발하게 나오지 않아 애니메이션책으로 읽어줬어요. 중1 때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는 이유를 물어보니 게임 삼국지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중2인 딸애는 내가 번역한 책을 꼬박꼬박 읽는 편입니다. 아이들에게 ‘브루노를 위한 책’은 어떨까요? 결국 우리 아이들은 둘다 나이에 맞는 책읽기보다는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찾아 읽은 셈이지요. 이런 면에서 ‘나이에 따른 추천도서’가 의미가 있을까요?

김장성=부모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장도서’ ‘추천도서’가 독자입장에서는 편한 점이 많아요. 부모들이 모든 책을 다 읽어보고 사 줄 수는 없지요.

최=부모들이 자기아이들 책을 고르면서 자율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지요. 대형서점에서 추천도서목록을 들고 아이들 책을 무더기로 사가는 어른을 봤어요. 우리나라 독서운동이 개개인의 교육열에 의존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요. 또 새로 도서관을 짓기보다 마을문고나 이동도서관을 활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노=사실 그동안 아동문학에 대한 대접이 너무 소홀했어요. 최근 어린이책 시장이 장사가 된다며 출판사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지만 작가의 빈곤으로 내실있는 출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요.

김장성=독자들은 문체라든지 치열한 주제탐구와 같은 여러 문학적 요소들을 아동문학에도 요구해야 합니다. 작가들도 다작을 미덕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와 문학이 성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천착해야 합니다.

김경연=독일에서는 어린이책이 하나의 대학연구분야로 자리 잡았지요. 해리포터는 아동문학과 성인문학의 경계를 허물었어요. 괴테 세미나가 열리는 강의실은 텅텅 비어도 해리포터 세미나에는 사람들이 몰려요. 판타지 역시 추리소설이나 SF소설과 마찬가지로 통속대중문학의 한 분야로 치부됐는데 아동문학의 재발견과 더불어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이지요.

노=해리포터 열기를 보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종이책이 살아남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작가가 어린이들의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여기서 어린이책에 대한 어른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어요. ‘어린이 책은 이래야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지요. 내가 쓴 책 중에 밤에 바둑이들이 모여 주인을 흉보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이 화투를 친다’는 얘기가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편집자가 빼라는 거예요. 날개를 단 상상력이 설자리가 없지요.

김경연=일부 출판사들이 무책임하게 해외저작의 번역출간에 주력하면서 너무 쉽게 책을 만들고 있어요. 그러나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북페어에서 수없이 발품을 파는 출판사들도 많습니다.

최=어린이책 시장에서 우리책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실제로 좋은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외국번역책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을 엄선해야 합니다. 우리 작가에게서 나오지 않는 책이 있거든요. 결국 출판사가 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