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시베리아 송유관 잡아라”…건설비지원등 총력전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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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의 석유 소비 대국인 일본과 3위인 중국이 러시아 시베리아 유전의 송유관을 끌어가기 위해 불꽃 튀는 막판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추정 매장량 최대 100억배럴, 하루 생산량 100만배럴에 달할 이 유전의 송유관 동단(東端)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이 될지, 일본과 가까운 러시아의 나홋카가 될지 러시아가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은 지난달 28, 2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빅토르 크리스텐코 러시아 부총리와 긴급 회담을 갖고 11시간에 걸친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일본은 이미 나홋카 송유관 건설이 결정되면 건설비 50억달러 전액을 대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는 대여 조건을 완화해 추가 지원까지 제시했다. 지난달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협상했다.

그러나 29일 크리스텐코 부총리는 “경제 기술 지리적 조건을 종합 검토한 뒤에 결정하겠다”고만 답했다.

러시아가 일본의 제안에 소극적인 이유는 ‘다칭 송유관’이 훨씬 짧고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칼 호수 옆 앙가르스크에서 시작할 시베리아 유전 송유관은 다칭까지 길이 2400km, 건설비 25억달러지만 나홋카까지는 길이 3800km, 건설비 50억달러 규모. 경제성을 살리려면 다칭 송유관은 연간 2000만t을 수출하면 되지만 나홋카 송유관은 연간 5000만t을 수출해야 한다.

러시아는 원래 두 송유관을 모두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경제난과 기술적 여건 때문에 확정을 미뤄오다가 올해 초 하나만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하나는 언제 건설할지 미확정이다.

이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푸틴 대통령과 만나 다칭 송유관 건설비로 17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하고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자 OAO 유코스가 중국 국영 석유(CNPC)에 25년간 석유를 공급하기로 예비 계약을 했다.

중국은 선수를 쳐놓음에 따라 느긋한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석유 수입의 88%를 의존하고 있는 중동의 정세가 워낙 불안정해 나홋카 송유관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처를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일본은 현재 러시아 극동 주정부가 나홋카 송유관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나홋카 송유관으로 한국 일본은 물론 북미까지 수출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가와구치 외상은 29일 회담에서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는 북방 도서 영유권 분쟁이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해 나홋카 송유관 안이 성사되지 않으면 영토 분쟁 문제를 다시 꺼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일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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