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노동정책 '대화와 타협'서 '법-원칙 중시'로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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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최근 “노조에 대해 특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 데 이어 30일“노사문제에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밝혀 노 대통령의 노사관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재계로부터 친노(親勞)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받아온 노 대통령은 철도파업문제 만큼은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잇따라 노조측에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철도파업이 명분이 없는데다 4월 20일 이미 정부가 해고자 복직, 일인 승무제 철회 등 노조의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철도 구조개혁 법안 철회 등 노사협상 대상이 아닌 사안을 들고 나오자 ‘철도노조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핵심 참모들의 분석이다.

청와대 정책실 핵심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터진 두산중공업 파업과 화물연대 및 조흥은행 노조 파업까지만 해도 정부가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철도파업은 노정(勞政) 간에 이미 약속한 사항을 노조가 스스로 파기했기 때문에 청와대도 노조측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노조에 가깝다는 언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노조에 성의를 보여 왔는데도 철도노조가 정부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서 국민과 정부를 협박하면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동안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던 노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것은 정부에 항복을 강요하는 노조의 요구에 절대 물러서지 않기 위한 것으로 이번에 노조에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물에 빠진 철도노조를 건져주니까(4월 20일 합의) 이번에는 보따리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격”이라며 “철도노조를 방치하면 노 대통령은 앞으로 계속 노조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청와대 내부에서 팽배하다”고 말했다.

갈수록 얼어붙는 경기상황도 청와대가 노조파업에 엄정 대처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투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장 엔진’의 재가동이 불가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도 대화와 타협에 무게를 두기보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노동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문제 관련 발언▼

△파업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2002년 12월18일 서울 명동 거리유세)

△현재는 경제계가 힘이 세지만 향후 5년 동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겠다.(2003년 2월13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방문)

△상식과 원칙의 범위를 벗어나서 무리하게 분쟁이 격화될 때에는 법과 질서의 잣대를 갖고 문제를 풀어가겠다.(3월10일 재정경제부 업무보고)

△노동문제는 공안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다. 노동자만 구박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도록 해야 한다.(3월17일 법무부 업무보고)

△과거에는 노동운동이 생존권이나 사회 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이뤄져 정당성을 가져왔으나, 최근에는 일부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어 우려스럽다.(6월19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

△노조가 정부 길들이기를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6월23일 근로감독관 초청 특강)

△불법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국민의 신체나 재산, 생명이 급박한 위기를 당할 때 필요한 것이다. 일시적인 폭력이라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맞다.(6월23일 근로감독관 초청 특강)

△노동자들도 자율권을 갖고 활동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특혜도 해소돼야 한다.(6월27일 포브스지 편집장 접견)

▼권기홍장관 "노조 너무 경직…힘 줄이겠다"▼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은 30일 “노동조합의 힘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도 파업이 사흘째로 접어든 이날 권 장관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부 거대 노조는 너무 경직돼 있어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서 “노조 지도자들에게 그런 태도로 일관하면 지지기반을 잃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고 말했다.

권 장관은 “한국의 고임금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큰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 “노동법을 가능한 한 빨리 개선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경영자에게 근로자 구조조정권을 더 주는 것은 절반의 해법”이라면서 “구조조정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재취업을 위한 교육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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