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나흘째]노조 "흩어져 시간끌자" 散開투쟁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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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파업에 들어간 전국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사측의 업무복귀 명령을 거부한 채 ‘산개(散開)투쟁’에 들어가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파업사태가 길어질 전망이다.

산개투쟁이란 조합원들이 수많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집회장에 집결했다가 다시 흩어지는 방식으로 파업을 이어가며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일종의 게릴라 전술. 지난해 2월 25일부터 37일간 계속됐던 발전산업노조 파업 때 처음 선보여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달 30일 철도노조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28일 경찰이 연세대 등 전국 5개 농성장에 진입하자 5∼10명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산개투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 4000여명, 부산 1600여명, 대전 1700여명 등 1만여명이 1700여개 조로 나뉘어 산개투쟁을 하고 있다고 지도부는 주장했다.

노조원들은 여관이나 24시간 영업하는 사우나 등에서 잠을 자거나 잠깐 휴식을 취한 뒤 공원 등지를 배회하다 휴대전화 또는 인터넷을 통해 중앙상황실의 지침을 받아 행동한다. 이 때문에 경찰로서도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

일부는 30일 민주노총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집회에도 평상복 차림으로 참가해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치고 빠지는’ 식의 산개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는 휴대전화 등 첨단 디지털 장비. 휴대전화를 통해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데다 PC방에서도 지도부의 지침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어 연락망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환규(千桓奎) 철도노조 위원장 등 지도부는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전 조합원은 정부의 복귀명령을 거부하고 파업대오를 유지할 것’ ‘지역거점을 중심으로 2시간 거리 이내에서 산개투쟁에 들어갈 것’ 등의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산개투쟁의 성공 여부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결속력에 달려 있다.

미복귀자에 대한 중징계 조치, 회사 간부나 가족을 통한 회유 등을 이겨내야 하고 실제보다 복귀 비율을 부풀려 발표하는 정부의 ‘심리전’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노조는 ‘이 고비를 넘기면 정부는 협상을 제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의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위원장 투쟁명령을 사수하라’ 등의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업무에 복귀하는 조합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

철도노조 조상수(趙庠洙) 정책기획실장은 “철도운행의 핵심인력인 기관사들은 3년가량의 기관사 양성과정을 통해 끈끈한 동지애가 형성돼 있다”며 노조원의 결속력이 남다르다는 자신감을 표시했다.

철도노조는 정부의 강경대응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산개투쟁을 계속한다는 방침. 민주노총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길어져 ‘비용’이 떨어질 경우 각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재워주기 운동’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화물연대 대체수송 거부 '설상가상'▼

사흘째 계속되는 철도노조 파업으로 열차운행이 평소의 절반 이하 수준을 맴돌면서 경제계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5월 ‘물류대란’을 불러왔던 화물연대 소속 차주들이 철도노조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7월 초 다시 집단행동을 벌일 것을 검토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화물연대의 상급단체인 전국운송하역노조는 30일 “철도노조의 파업을 물리력으로 진압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7월 중순으로 예정했던 운송거부 시기를 앞당길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당초 화주 및 운송업체와의 운임인상 협상이 늦어지고 있는 데 반발해 7월 6일부터 18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해 7월 중·하순 집단행동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투표 일정을 단축하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는 또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난달 28일 이후 철도물량 운송분에 대해 수송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계에서는 ‘제2 물류대란’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철도를 이용한 전체 화물수송 물량 가운데 40%를 차지하는 시멘트업계는 철도파업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성신양회는 평소 열차로 하루 평균 1만여t의 시멘트를 수송했으나 파업 이후에는 수송량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신양회 관계자는 “근거리 트럭운송업체들을 장거리로 전환시켜 시멘트 수송에 나서고 있으나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열차를 통해 원자재를 공급받던 일부 회사는 생산 중단의 위기까지 맞고 있다. 태백지역에서 무연탄 수송량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 재고가 없는 연탄공장은 가동 중단 위기에 빠진 것.

무역업계와 가전, 자동차업계의 피해도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자동차는 하루 1차례씩 철도편으로 울산에서 서울까지 수송하던 180대가량의 완성차를 이날은 철도편으로 보내지 못해 트레일러편으로 긴급히 대체해서 보냈다.

삼성전자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부산으로 보내는 하루 25∼3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를 차량 운송으로 대체했지만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 2, 3개가 너무 무거워 차량 운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한국무역협회는 철도파업으로 수출컨테이너 처리 차질 물량이 172TEU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무역협회는 파업이 장기화돼 수도권∼부산, 수도권∼광양 컨테이너 화물열차 운행이 계속 중단되면 하루에 수출화물은 530TEU, 수입화물은 731TEU의 수송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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