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55…아메 아메 후레 후레(31)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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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이 되자 기관차도 기관사들도 한숨 돌리고 있는 모양인지 연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습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공기로 얼굴을 씻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봉천에서 ‘비둘기’로 갈아타고 대련에서 내려서, 대련에서 하룻밤 자고 배를 탄다, 시모노세키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멀었다…. 소녀는 얼굴을 빗속으로 내밀고 멀리 보라색으로 물든 산자락을 보았다. 저기는 비가 그쳤나, 비는 내리는데 노을 지는 거 보기는 처음이네, 머루색으로 짙게 물든 데도 있고 연보랏빛으로 물든 데도 있고, 군데군데 피가 번진 것처럼 빨간 데도 있고, 예쁘기보다 어째 섬뜩하네, 이 세상 끝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온 여객 전무가 모자를 벗어들었다.

“앞으로 10분이면 다음 역 신막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분은 준비해 주십시오. 잃어버리시는 물건이 없도록 아무쪼록 주의 바랍니다”

“도시락은 몇 개를 사야 되나…음 어디, 하나, 둘, 셋, 넷, 다섯” 남자는 일어나 치마저고리 모습의 여자들을 세기 시작했다.

“아직 점심 때 먹은 게 소화도 다 안 됐는데”

“한창 먹을 땐데 무슨 소리, 배야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고파지겠지. 도중에 말 걸어서 몇까지 셌는지 잊어버렸잖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다음이 뭐였지?”

“여섯이오.”

“에이 모르겠다. 히(하나), 후(둘), 미(셋), 요(넷), 이츠(다섯), 무(여섯), 나나(일곱), 야(여덟), 코(아홉), 토(열), 주이치”

남자는 사냥모를 만지면서 일어나 두 자기 건너 앞에서 팔짱을 끼고 졸고 있는 동그란 안경 낀 청년을 불렀다.

“어이, 이제 10분이면 신막이다”

청년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뭘 그리 두리번거리느냐, 참호에서 눈뜬 꼴을 하고. 도시락 열세 개 사와라. 정차 시간 1분밖에 없으니까, 신막에서 못 사면 평양까지 참아야 하니까 서둘러”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저 건너 산기슭을 에워싸고 있던 연기가 바로 앞산 뒤로 숨으면서 희미하게 들리던 기차 소리를 지웠다. 그러다 잠시 후에 느닷없이 기적 소리가 뽀- 폭 폭 하고 울려 퍼지더니 파시로가 객차를 끌고 길쭉한 어둠에서 빠져나왔다. 빗발은 가늘어지기는커녕 천둥 번개와 함께 더더욱 굵어져, 기차는 마치 폭포 속을 질주하는 것 같았다, 칙 칙 칙 칙 칙 칙 칙.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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