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영희/ ‘노동자 中心’으론 안된다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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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노조 파업에 잇따른 철도 노조 파업, 그리고 이에 가세하는 양대 노총의 총파업투쟁 등으로 전국은 바야흐로 ‘노동대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이번 철도 노조의 불법사태를 용납하지 않겠으며, 이들 불법행위자에 대해서는 엄정히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멀어지는 ‘동북아 중심’▼

그동안 노조의 불법행동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취해오던 정부의 이번 선회(旋回)는 단순한 엄포용이거나 일시적 사태수습용은 아닌 것 같다. 정부도 어느 정도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고, 노동분쟁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어려워질 것이란 인식을 심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노조는 우선 정부의 경고를 진실로 받아들이거나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친노동자 정권에서 얻을 것은 다 얻어 보자는 속셈을 갖고 있으며, 밀어붙이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당선자 시절 그러한 빌미를 제공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심상치 않은 것은 노동계가 정부의 이번 조치를 ‘반개혁적’ 노동탄압으로 보고 대정부 반대투쟁을 강력히 전개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어떻게 결말이 나든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이탈은 이들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노 정권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집권한 지 불과 넉 달밖에 되지 않는 현 정권은 지금 최대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 이른바 ‘반노동정책’을 지속해 이들로부터 완전히 등돌림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침체 속에 멍들고 있는 국민경제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정부가 우유부단하거나 어정쩡한 선택을 할 경우, 자칫하면 의외로 정권적 위기상황까지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 정권의 국정운영의 비전과 목표는 ‘동북아 중심국가’에 있다. 동북아 중심국가는 분명 ‘노동자 중심국가’는 아니며,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상회하는 선진적 산업국가 체제를 가리킨다. 노 정권의 ‘개혁’도 결국은 이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한 이러한 개혁은 역대 민주정권이 추진한 개혁과 맥을 같이하며, 굳이 현 정권에 의해 차별화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노 정권이 지향하는 국가발전은 화려한 언변(言辯)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거나 신기루처럼 홀연히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창의력을 총동원하고, 총력을 다 하는 각고의 국민적 노력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의 사태를 볼 때, 주변국가의 눈치가 보여서가 아니라 동북아 중심국가 얘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워져 가고 있다. 이러다간 동북아 중심국가는커녕 도리어 포퓰리스트적 중남미형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갖게 된다. 가뜩이나 부진한 경제상황에 신용등급마저 떨어진다면 외환위기 못지않은 위기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동북아 중심국가도 좋지만, 우리는 그에 앞서 확실한 민주국가를 이루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국가라야만 동북아 중심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다. 민주국가의 기본 징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법의 지배’다.

민주국가에서의 법은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적 합의에 의한 국가적 약속이다. 무엇보다 민주국가의 법은 먼저 집권자부터 이를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법을 준수케 할 ‘엄정한’ 책무가 집권자에게 주어져 있다.

▼줄파업, 중남미형 위기 불러 ▼

노 정권이 해야 할 우선적 과제는 이 나라에 법을 세우는 것이다. 역대 민주정권들이 가장 잘 하지 못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법적 노동운동을 막는 것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불법적 노동운동을 방치하는 것도 민주국가가 아니다. 노 정권이 올바른 노동질서를 이번에 확립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일도 앞으로 제대로 해내기 힘들 것이다.

이영희 인하대 교수·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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