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도요타의 ‘낡은 社屋’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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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자동차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일본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 조 후지오(張富士夫) 사장의 2층 양옥은 인구 35만명의 ‘도요타 타운’인 이 도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오렌지색 페인트를 칠해 세련미를 가미한 것만 빼면 세계적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평범한 외양이다.

조 사장을 비롯한 도요타 임원들이 세계 전략을 짜는 본사 사옥도 조형미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5층짜리 수수한 건물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탓에 건물 내부가 낡아 가끔씩 보수공사를 한다.

도요타는 지난해 1조4140억엔(약 14조원)의 경상이익으로 창사 후 사상 최대이익을 올렸다. 3년 연속 최대이익을 경신해 장기 불황으로 구겨진 일본 경제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존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 정도면 좋은 집, 멋진 건물로 옮길 법도 하지만 경영진은 별 움직임이 없다. 조 사장은 1999년 CEO가 된 뒤 ‘출퇴근이 쉽고 사는 데 불편이 없다’는 이유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등 미래형 신차를 개발하는 데 올해에만 6000억엔(약 6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필요한 곳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허튼 데는 돈을 안 쓴다는 근검절약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노조가 올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동결을 먼저 제의한 것도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조의 한 간부는 “인건비를 절감해 투자 여력이 생기면 회사가 흥청망청 하지 않고 꼭 요긴한 곳에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임원 1인당 평균연봉은 2117만엔이다. 이는 동종업체인 닛산자동차(1억4611만엔)는 물론 일본의 또 다른 대표기업인 소니(5669만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CEO 역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임원 봉급을 적게 주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스톡옵션을 둘러싼 일부 한국 CEO들의 잡음이나 ‘회사 돈을 내 돈 쓰듯’ 하는 풍조가 여전한 현실에 비춰보면 도요타 경영진의 윤리의식은 돋보인다.

외국의 모범적인 노사문화가 소개될 때마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후진적인 노사관계를 탓하고 외국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선진 노사문화의 바탕에는 어떤 노력과 정신이 밑거름이 됐는지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현장 취재 중 만난 도요타의 한 근로자는 “한국의 노조가 파업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다만 이렇게 하는 게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使)도, 노(勞)도 한국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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