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아름다운 기부

  • 입력 2003년 6월 30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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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에 백만장자가 된 미국의 기업인 폴 마이어는 저서 ‘성공을 유산으로 남기는 법’에서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자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고. 그에 따르면 부모가 남기는 유산에는 돈과 부동산 같은 물질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정신적 유산이란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습관 태도 지혜를 말한다. 어렵게 일궈낸 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지 못하고 2, 3대 만에 사라지는 것은 자식에게 돈만 남겨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남기려는 정신적 유산은 ‘주는 기쁨’이다. 수입의 50%를 항상 기부해온 그는 ‘사람이 자신의 수입에서 기부하는 비율이 커지면 커질수록 행복 또한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기부행위는 인간의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반대급부’를 준다. 남을 도와주었다는 보람은 기부를 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자선이라는 덕성은 이중으로 축복받는 것이요,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미덕 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라고 칭송했다. 우리의 기부문화가 차츰 발전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4명 가운데 3명이 1년에 1번 이상 자선적 기부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도 ‘주는 기쁨’에 서서히 눈을 떠가고 있다.

▷1월 타계한 태평양그룹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유족들이 ‘아름다운 재단’에 50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혼란스러운 노사분규의 와중에서 상쾌한 여운을 남긴다. 저마다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기부금을 저소득 모자(母子) 가정을 위해 쓰기로 한 것도 신선한 발상이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절실한 시점에 이르러 있다. ‘기부의 천국’ 미국에서처럼 역시 최고경영자와 가족들이 모범을 보여야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동정심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역경과 재난을 수도 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TV 프로가 성공을 거두는 이유다. 이처럼 기부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여지는 넓지만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기부자들은 자기가 낸 돈이 투명하게 관리, 사용되고 있는지 불신감을 갖고 있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연결하는 사람들의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이런 불신이 해소될 때 개인 기부는 늘어날 것이고 서 회장 가족 같은 기부자의 아름다운 뜻도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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