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씨 채권 미스터리]범인 검거보다 채권회수 혈안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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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50·해외체류)가 강탈당한 채권을 되찾기 위해 청와대 등에 로비를 벌이며 ‘필사적인’ 회수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 채권의 성격과 규모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로부터 채권 회수를 위해 신속하고 은밀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받은 경찰은 범인 검거보다는 오히려 채권 회수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강탈과 회수=지난해 3월 김씨 집을 턴 강도사건 범행 관련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김씨가 잃어버린 채권은 △국민주택채권(443장) △고용안정채권(17장) △증권금융채권(170장) 등으로 모두 90억7112만원어치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찰은 이 중 59억여원의 채권이 회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탈당한 채권의 정확한 규모는 명확하지 않다. 판결문 기록은 90억원가량이지만 일부 범행 당사자들은 140억원가량의 채권을 강탈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

이 중 제1종 국민주택채권은 배서가 필요한 무기명 채권으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의지만 있었다면 배서자 추적 등을 통해 돈의 성격을 파악할 수도 있었으나 전혀 그러한 절차 없이 회수된 채권을 피해자 김씨에게 되돌려 주었다.

김씨가 법원에 도난 채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공시최고 신청을 하면서 잃어버린 채권의 절반 수준인 50억∼60억원만 신고한 점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김씨의 한 측근은 “본인도 채권 규모나 종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해 일부만 신고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채권 회수에 혈안이 된 이유=전문가들은 김씨가 지난해 3월 강탈당한 채권 545장(90억7000만원 상당) 중 336장이 배서가 필요한 국민주택채권이기 때문에 범인 검거보다 채권 회수에 열을 올렸다고 분석한다.

증권금융채나 고용안정채의 경우 외환위기 때 한시적으로 발행된 무기명 장기 채권, 속칭 ‘묻지마 채권’이기 때문에 자금 추적을 피할 수 있지만 국민주택채권의 경우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발행자와 돈세탁 경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

특히 김씨는 강탈당한 현금 8억여원과 현금처럼 쓰일 수 있는 무기명 장기 채권 40여억원(209장)이 범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을 당시에도 분실신고를 하지 않고 채권 뒤에 배서가 되어 있는 국민주택채권의 회수에만 총력을 기울여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씨로부터 흘러나온 채권을 산 S상사의 A씨(44)는 “3월에도 김씨의 국민주택채권 20억원어치를 팔겠다고 제의한 장물아비가 있어 경찰에 제보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나를 장물취득혐의로 구속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A씨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신청하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또 “내가 장물아비들을 잡아두었으나 (강력반 형사들은) 장물아비들의 신병 인도에는 관심도 없었다”며 “청와대와 서대문경찰서에 진정을 냈으나 묵살됐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씨는 강도를 당한 지 2∼5달 뒤에야 공시최고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나 ‘재산권 보존’보다는 ‘말 못할 사정 보호’에 더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서울지법에 채권 공시최고 신청을 내 올 4월 채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제권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씨가 지난해 3월 31일 1차 강도사건 이후 지난해 10월 제권판결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채권의 종류▼

▽기명 채권=사고팔 때 반드시 소유자를 채권 앞면에 기명해야 하며 기명된 사람에게만 재산권을 인정해 준다. 양도세, 증여세가 부과된다. 국내에서는 특별히 주문할 경우에만 발행된다.

▽무기명 채권=소유한 사람에게 재산권을 인정해 주는 채권으로 수표처럼 뒤에 배서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채권의 대부분은 이러한 형태로 발행되나 실제로는 기명채권처럼 증여세 등이 부과된다. 국민주택채권, 국고채권, 한전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무기명 장기 채권=‘묻지마 채권’으로 불린다. 무기명 채권 중 실명 확인 절차나 자금출처 조사, 증여세 등을 면제해 주는 채권. 고용안정채권,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등 3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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