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주례연설 꼭 필요한가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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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을 제안하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려는 모양이나 여러 가지 우려가 든다. 권위주의 시절 이래 계속된 정권과의 유착으로 공영방송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던 KBS 제안의 순수성부터 의심스럽다. 탈(脫)권력과 정치적 중립이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할 KBS가 또다시 샛길로 빠지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다.

주요 국정과제와 정부정책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도 말이 넘쳐서 구설이 끊이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또 무슨 얘기를 더 할 자리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개조론’ 특강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하고도 남지 않았는가. 또한 그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얘기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는가.

노 대통령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세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식이라면 주례연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개인적인 문제를 해명하거나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연설 역시 부당하고 불필요하다. 국정을 통할하는 대통령의 연설은 범국가적인 현안에 대해 국론 결집을 위한 대국민 설득의 범주를 벗어나선 안 된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전달하는 것도 불공정하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선 더욱 오해의 소지가 크다. 쌍방향의 토론이 보장되지 않는 한 건강한 국론 형성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야당을 포함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반론 기회가 동등하게 허용되지 않으면 주례연설은 오히려 소모적인 정쟁과 국론분열의 덫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많은데도 청와대가 이를 경시하면서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을 추진하는 의도가 석연치 않다. 청와대는 그에 앞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보다 존중하고 국민의 표현기관인 언론에 보다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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