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巨野 횡포’ 탓할 자격 있나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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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25일 대북 비밀 송금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150억원 비자금 의혹을 제대로 밝히자며 새 특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민주당 대변인실은 26일 이를 비난하는 4건의 논평을 쏟아냈다.

논평의 공통된 내용은 “새 특검 법안은 정치적 실익도, 명분도 없는 거대 야당의 횡포이며 한나라당이 이를 강행 처리할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27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다수당의 만행’을 규탄하며 새 특검 법안을 적극 저지하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새 특검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간에 첫 대면 공방이 벌어진 이날 오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의 풍경은 민주당의 결연한 의지와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법사위 한나라당측 간사인 김용균(金容鈞) 의원이 “대북 송금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하루 빨리 풀어야 한다”며 특검 법안 상정을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함승희(咸承熙) 최용규(崔龍圭) 의원이 “26일 법사위에 회부된 특검 법안을 하루 만에 상정하는 것은 법사위 관례에 맞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여야간 논쟁은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민주당이 수적인 면에서 완전히 밀렸기 때문. 한나라당측은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을 포함해 법사위원 8명 전원이 참석해 새 특검 법안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했으나 민주당은 법사위원 6명 중 3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신당 추진파인 주류의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과 천정배(千正培), 조배숙(趙培淑) 의원은 이날 회의에 출석하긴 했으나 특검 법안 논의에 앞서 자리를 떴다.

오후 6시경 새 특검 법안은 표결을 통해 ‘찬성 8, 반대 3, 기권 1’로 결국 상정됐다.

조순형 의원은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의 27일 모습이 민주당의 현주소이다. 소수당이면 단결된 힘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다른 상임위도 사정이 비슷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왜 여당이 야당보다 더 국회에 안 나오느냐’고 꼬집는데, 솔직히 변명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의원총회 때마다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국회 출석을 열심히 해 달라”고 되풀이한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결석’은 이미 일상화돼 버렸다.

국회 재적 272석 중 한나라당은 153석(56.3%), 민주당은 101석(37.1%)이다.

민주당은 ‘153석의 횡포’를 탓하기 전에 과연 자신들이 ‘101석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먼저 자성해야 할 것 같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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