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김동원/일할 맛 잃은 공인회계사들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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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인회계사인 한 친구가 작심한 듯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정말 (회계사일을) 못 해 먹겠다”는 것이었지요.

무슨 일 있느냐고 묻자 “동료 회계사가 최근 소송에 걸려 몇 차례 법원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회의가 더 깊어졌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요즘 ‘아 옛날이여’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잘 나가는’ 직종으로 꼽혔던 공인회계사의 직업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대우사태 이후 회계장부를 부풀리는 분식회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면서 회계사의 책임은 몇 배로 커졌지 않습니까.

며칠 전 인터넷 포털서비스업체 드림위즈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사 P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회계사들의 환경변화를 잘 말해주는 사례로 보여집니다.

투자자들의 소송제기는 물론,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예금보험공사와 같은 기관들도 부실책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송을 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사정이 이쯤 되니 “소송이라는 말만 들어도 뼈마디가 흐늘흐늘해진다”라는 친구의 고뇌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회계사들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진 데는 갑작스레 늘어난 정원(定員)도 한 몫을 차지합니다. 회계사 선발인원이 2001년부터 1000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무를 배울 기관을 찾지 못한 수습회계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얼마 전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요. 사상초유의 ‘회계사 시위’였습니다. 4월 말 현재 회계사 숫자는 대략 6500명 정도입니다.

회계법인에 소속돼 있는 회계사들의 고충은 또 있는 모양입니다.

상당수의 회계법인은 감사를 받는 기업에 경영컨설팅을 해 주는 대가로 비싼 수수료를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회계장부를 만들고 이를 용인해줄 것을 회계사들에게 암묵적으로 바란다는 것이지요.

올해 금융감독원이 회계법인의 기업 컨설팅을 제한하고, 특정회계법인이 한 기업의 회계감사를 6년 이상 맡지 못하도록 한 것도 이 같은 ‘어두운 거래’를 끊어보자는 고육지책입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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