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주부학교 2415명 만학의 꿈 키워… 70세이상도 33명달해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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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11월 개교 50주년을 맞는 이 학교에는 현재 주부 2415명이 재학하고 있다.-권주훈기자
주부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11월 개교 50주년을 맞는 이 학교에는 현재 주부 2415명이 재학하고 있다.-권주훈기자
“어떻게 하면 저 간판들을 읽을 수 있을까.”

올해 72세인 김예순 할머니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퀵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유정이씨(40·여)는 2년 전만 해도 서류배달을 다니다 영어로 된 간판을 못 알아봐 헤맨 적이 많았다.

이들은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다. 못 배운 한(恨), 까막눈의 설움과 불편은 라디오방송으로 알게 된 양원주부학교에 등록하면서 사라졌다.

이 학교는 6·25전쟁이 끝난 1953년 11월 13일 ‘일성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해 올해로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이 학교는 당초 함경도 출신 피란민들이 실향민 자녀, 전쟁고아, 극빈자에게 중고교 과정을 가르치려고 만든 것. 일성(一醒)은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李儁) 열사의 호.

70년대 후반 이후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청소년 대신 성인이 하나둘씩 입학하고 특히 주부가 늘어나자 1983년 양원주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는 한글로 ‘아줌마 학교’(www.ajummaschool.com).

국어 영어 수학 한문 과학 도덕 사회를 가르치는 기초반(초등반)과 중고등부, 대학한문 지방자치 중국철학을 다루는 교양부와 연구부까지 2415명의 여성이 만학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와 30대는 67명뿐이고 나머지는 40대 이상이다. 70대 이상도 33명이나 된다.

월수금과 화목토로 나눠 1주일에 3일, 하루 4시간씩 수업을 하는데 기초반에는 역이름을 읽지 못해 지하철을 타지 못하는 여성이 수두룩하다.

대부분이 자녀 또는 손자 손녀를 둔 늦깎이 학생이지만 교사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단축수업을 가장 싫어할 만큼 학업에 열심이다. 한자시험에 떨어지면 분해서 울고불고 잠 안 자며 공부해서 결국 붙는 경우가 많다.

최금자(51) 김인숙씨(47)는 강원 강릉과 충남 당진에서 6∼7시간씩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와서 수업을 듣는다. 4, 5월 시행된 검정고시에서 정매호(64) 신평림(73) 조춘래 할머니(75)는 각각 고졸 중졸 초등학교 부문의 최고령 합격자가 됐다.

국어담당 권오순 교사(여)는 “솜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학습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이에 학생들은 “심청전의 심 봉사가 눈을 뜨는 기분”이라고 화답했다.

3월과 9월에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희망자 대부분이 글을 못 읽어 신문광고는 하지 않고 라디오로만 안내한다. 수업료는 한달 4만5000원이며 형편이 어려우면 감면해 준다.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6번 출구)과 서강대 후문 사이에 있다. 02-704-7402, 0153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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