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의 두 회사]도요타자동차 vs 현대자동차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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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본사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조립이 끝난 자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도요타 본사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조립이 끝난 자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도요타자동차…53년 무분규 ▼

지난해 12월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새해 임금협상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결산은 2003년 3월이지만 대미(對美) 수출 호조로 대규모 이익이 확실하던 터라 조합원들의 기대치는 높았다.

집행부는 정기승급분을 보장받는 대신 기본급은 동결시키는 ‘뜻밖의 안’을 회사측에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반대도 거셌지만 격론 끝에 올 2월 열린 대의원총회는 집행부 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한국의 고급승용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렉서스를 생산하는 도요타는 예상대로 3월 결산에서 1조4140억엔(약 14조원)의 경상이익으로 3년 연속 최대이익 경신과 창사 후 사상최대 이익이라는 두 가지 기록을 한꺼번에 세웠다. 노조가 따낸 것은 정기승급분(6500엔)과 작년보다 20만엔 더 늘어난 상여금이 전부.

▽‘임금보다 고용’ 도요타 노조의 선택=도요타 본사가 있는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는 이름 그대로 도요타 타운. 도요타 노조의 고노 신야(河野晋哉) 기획홍보국장은 기본급 동결에 대해 “회사가 처한 상황, 경쟁업체의 동향, 자동차시장의 전망 등을 두루 감안해 내린 선택”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작년에 이익을 많이 낸 것은 미국 수출이 유난히 잘 된 데다 엔화 가치가 떨어진 덕이 컸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면서 “당장의 임금인상보다 회사를 살려 장기적으로 고용을 보장받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투쟁해도 조업 차질은 금물=도요타 노사의 무분규 기록은 올해로 53년째. 경영진과 노조는 1950년 장기파업의 후유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50일간의 파업으로 전체 근로자의 25%인 15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임원 전원이 물러났다. ‘극한대립은 노사 모두 손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

도요타 경영진은 10년 안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선두권에 오른다는 계획에 따라 연료전지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환경친화형 차종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회사가 투자여력을 늘리려면 노조가 나서서 인건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집행부의 논리에 조합원들도 동의했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은 “형편이 나빠지면 봉급은 깎을지 몰라도 해고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년보장 약속’으로 노조의 협조에 화답했다. 도요타 노조도 3월엔 상여금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본사 운동장에서 ‘춘투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는 점심식사 시간과 퇴근 후에만 열었다. 어떤 경우든 조업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도요타(일본)=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한국 현대자동차…연례 파업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싼타페 생산라인이 27일 오전 노조의 파업으로 멈춰서 있다. 울산=정재락기자

“세계의 자동차회사들은 신기술 개발에서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는 해마다 노사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으니….”

27일 오전 10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싼타페 생산라인. 사흘째 멈춰선 라인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 임원은 이같이 말한 뒤 사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해마다 대리전=28일부터 일단 조업에 복귀할 예정이지만 언제 다시 라인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 노조는 최근 10년간 1994년과 97년 두 해를 제외하면 매년 파업을 했으며 파업일도 총 132일이나 됐다. 교섭기간도 해마다 40∼180일이다.

현대차 노조는 해마다 노동정책문제를 협상테이블에 꺼내놓는 등 전체 노동계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어 교섭기간이 길어지고 쟁의도 잦다. 올해의 △주 40시간 근무 △비정규직 조직화 △자본이동 특별협약 체결 등 3대 핵심 요구안도 정책적으로 결정될 성격이 짙어 회사 차원에서 쉬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경영참여 요구=노조는 해외공장 신설을 반대하면서 국내생산을 연간 193만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해외에서 생산된 차량이나 부품을 국내로 역수입할 수 없고 해외공장 설립시 노사 동수(5명씩)로 ‘해외경영전략위원회’를 설치해 만장일치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58세까지의 고용보장도 요구사항.

회사측은 2010년 생존기업(GT-5) 진입을 위해 연간 564만대 생산목표로 해외공장 설립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으나 ‘노조 반대’ 때문에 주춤하고 있는 것.

반면 노조 장규호(張圭浩·36) 공보부장은 “경영진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조 대표의 이사회 참여가 보장돼야 하며, 이는 투명경영을 유도해 기업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개발은 언제 하나=현대차의 한 임원은 “10년 안에 연료전지차 및 하이브리드차가 휘발유차를 대체하는 등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면서 “이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노조는 신차종이나 신기술을 개발할 경우에도 노조와 사전합의가 있어야 하고, 신차종은 국내공장에서만 생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도부의 강경노선이 거듭되다 보니 24일 파업찬반투표에서는 찬성률이 54.8%에 그치는 등 노조원의 민심이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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