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크린쿼터 어찌할꼬…문화부-재경부 팽팽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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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축소논란이 불거지자 영화인들이 6월12일 축소불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스크린쿼터 축소논란이 불거지자 영화인들이 6월12일 축소불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제)는 과연 한미투자협정(BIT)의 걸림돌이자 한국영화의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는 과도한 보호장치인가.

BIT와 스크린쿼터 논란이 국회로 옮아갔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27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의 견해를 들었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김광림 재경부 차관과 오지철 문화부 차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대립해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 차관은 문광위라는 점을 감안한 듯 회의 말미에 “BIT와 스크린쿼터를 분리한 협상이 가능한지 고민해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국익’과 ‘문화적 자존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한다.

▽쟁점1:스크린쿼터는 BIT 걸림돌인가

BIT 체결에 스크린쿼터가 걸림돌로 떠오른 이유는 BIT 협상의 상대인 미국이 스크린쿼터를 2007년 1월까지 73일로 줄일 것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날 김 차관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경제성장률을 회복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확대하려면 BIT를 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협력국인 미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BIT 체결이 불가피하다는 것.

실제 BIT 초안에서 스크린쿼터 관련 조항은 ‘투자와 관련해 국가가 국내에서 비롯된 상품을 구매, 사용하거나 특혜를 주는 조건을 명령 및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기본문안 6조다. 즉 미국 자본가가 한국 영화관에 투자할 경우 그 영화관에 스크린쿼터의 적용을 요구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오 차관은 “현재 미국 자본이 투자된 유일한 영화관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도 스크린쿼터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며 “극장주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미국 영화건 한국 영화건 많이 상영하기만 하면 된다. 스크린쿼터가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투자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은데도 미국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것이 문화부의 시각이다. 오 차관은 “미국의 속뜻은 쿼터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중국 시장의 진출을 꾀하고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대항의 연대를 깨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쟁점2:한국에 스크린쿼터는 불필요한가 스크린쿼터 축소론의 핵심은 영화산업도 시장의 자유경쟁 원리와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것. 김 차관은 “질 좋은 한국 영화가 많아지면 스크린쿼터가 없어도 된다. 스페인 그리스 이집트 등 현재 스크린쿼터를 운영하는 12개국의 영화산업이 그 덕분에 발전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오 차관은 “지구상에 할리우드와 맞서 ‘자유경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은 미국 영화 제작비의 40분의 1도 안되는 재원을 투입해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이건 처음부터 티라노사우루스와 ‘아기공룡 둘리’의 싸움”이라고 반박했다.

소비자의 선택과 관련해 김 차관은 “차세대 전략산업인 문화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도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고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오 차관은 “영화배급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배급이 안 되면 관객의 선택권도 봉쇄된다”고 지적했다.

김 차관은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2년 연속 40%대를 웃도는 상황을 들었으나 오 차관은 “올해에도 영화 1편에 6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했다. 불과 2년 연속 40% 넘은 것을 두고 안정됐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한국 영화계 입장

어떤 경우든 단 하루도 스크린쿼터를 축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감독’인 임권택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될 경우 영화 찍는 일을 그만 두겠다”고 말할 정도로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차장은 “멕시코는 미국의 압력으로 스크린쿼터를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한 뒤 자국영화 점유율이 4%에도 못 미치며 최근에는 영화관 창구에서 걷는 1페소의 영화산업발전기금을 폐지하라는 미국의 추가 압력을 받고 있다”면서 “국제 투자협정의 문화적 예외인 스크린쿼터 축소나 폐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계가 국익을 감안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영화제작 여건 개선, 세제 혜택 등 실리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스크린쿼터 외국선 어떻게 하나?
스크린쿼터 유지 사례스페인 그리스 이집트 등 12개국. 스페인은 유럽연합의 영화를 연간 20% 이상 상영하는 쿼터제 운영. 또 스리랑카는 연간 84일, 파키스탄은 연간 55일의 쿼터제 유지. 일본은 스크린쿼터 대신 40%가량의 배급쿼터제, 프랑스는 방송 수익의 3%를 영화제작에 지원하게 하는 제작쿼터제로 자국 영화 보호
스크린쿼터 폐지 사례대만은 90년 이후 쿼터제를 단계적으로 축소한 뒤, 자국영화 점유율이 90년 35%에서 현재 1% 안팎으로 추락. 멕시코는 93년 이후 매년 5%씩 스크린 쿼터 축소해 98년 완전 폐지했으며 연간 영화제작편수가 80편(90년)에서 10편(98년)으로 줄어듦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스크린쿼터 ▼

한국 영화의 상영 기회를 보장해주기 위해 국내 영화관들이 연간 146일(최소 10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 1966년에 시작됐으며 85년부터 146일로 확대됐다. 성수기에 한국 영화를 상영하거나 통합 전산망에 가입하면 최대 40일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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