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국경없는 의사회' …"그들은 정말 성자일까"

  • 입력 2003년 6월 27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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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가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당시 원주민을 치료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물이있는집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가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당시 원주민을 치료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물이있는집
◇국경없는 의사회/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248쪽 1만원 우물이있는집

슈바이처와 ‘국경없는 의사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의 질병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잘사는 나라의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국경없는 의사회(MSF·Medecins Sans Frontieres)’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도 통하지 않고, 말라리아와 콜레라가 들끓고, 살육과 폭력이 자행되는 곳에서 하루 14∼15시간의 중노동을 견디며 최소 생계비에 해당하는 월급만 받으며 전염병에 걸리거나 자칫하면 총탄에 맞을 위험 속에서 봉사한다면 누구나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MSF의 회원들은 과연 현대사회의 가난과 질병을 물리치는 성자 또는 영웅들인가.

인류학자인 저자 엘리어트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르완다 내전의 현장에서 이들과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의문을 풀어 나간다. 놀랍게도 이들을 헌신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동정심이나 타고난 착한 심성 혹은 사명의식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동기는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도 했다. 취직이 안돼서, 혹은 취업 대기 중이어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는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인간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공허하다. 그러나 재난의 현장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극한 상황 속에서 타인을 살리는 활동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 동료들과 난민들과 계산적이지 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이 위험천만한 현장을 찾는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MSF는 1967∼70년 전쟁 중이던 비아프라공화국에서 적십자 활동을 벌이다 환멸만 느끼고 돌아온 프랑스인 의사와 언론인들이 창설한 단체다. 그들은 자국에 이익이 되는 활동만 펼치는 봉사활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정치적 의도가 배제된 독립적인 구호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항상 보람으로 가득차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긴급한 조치를 취해 놓고 떠났는데 도움을 받은 이들이 얼마 뒤 학살당하거나 질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회의감에 빠져든다. 슈바이처의 활동이 제국주의 침략과 학살을 은폐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듯이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 같은 비판이 쏟아지기도 한다. 선진국들이 무기와 상품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얻는 한편으로 선량한 유럽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각종 기부금에 의존하다 보니 TV의 관심을 끌어야 하므로 심지어는 인도주의를 이용한 사기 행각이라는 비판까지 대두되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MSF에 대한 지식을 전해 줄 뿐 아니라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참담한 아프리카의 현실, 봉사에서의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 대량학살에 숨어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 등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군데군데 서구인의 시각이 배어나와 불편한 대목도 있지만 한번쯤 읽어 볼 만한, 발로 쓴 보고서이다.

서홍관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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