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월경(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 입력 2003년 6월 27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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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 로제 샤르티에. 리쩌허우
브뤼노 라투르. 로제 샤르티에. 리쩌허우

◇월경(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강봉균 외 53명 지음/882쪽 3만5000원 한길사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지식의 최전선’의 후속편. ‘지식의 최전선’이 주제 중심이라면 이번에 나온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인물 중심이다. 56명의 필자가 76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지적인 포만감이 들기에 충분하다. 가장 큰 특징은 소개된 인물들의 면면에 있다. ‘이런 성격의 책이라면 당연히 이런 인물들과 만날 수 있겠거니’ 하는 예상을 허락지 않는다. 예컨대 피에르 부르디외나 미셸 세르가 없는 ‘대신’(?) 브뤼노 라투르와 알랭 바디우가 있다.

‘과학의 인류학’이라 부를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한 라투르는 국내에서 관련 전문가 및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나 회자되던 인물이다. 과학 실험실에 대한 민속지적 연구로 명성을 쌓은 라투르는, 과학지식사회학과 함께 현재 과학학 분야에서 유력한 흐름인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세련화와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론의 창시자 미셸 칼롱도 이 책에 소개돼 있기 때문에 그 배경과 흐름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책, 독서, 텍스트 등의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아날학파의 역사학자 로제 샤르티에가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샤르티에가 파악한 책과 독서의 역사가 요령 있게 설명돼 있다. 특히 ‘전자 텍스트의 위세가 커질수록 책의 형태로 출판된, 가능한 한 많은 텍스트들을 수집, 보관, 분류하는 도서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움베르토 에코. 조지프 나이

부지런한 교양 독자에게 익숙할 법한 인물로는 움베르토 에코, 리쩌허우, 니클라스 루만, 조지프 나이, 스티븐 굴드, 에드워드 윌슨, 반다나 시바, 이블린 폭스 켈러, 머레이 북친, 레지스 드브레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조지 화이트사이즈(화학자), 디디에 앙지외(정신분석학), 조르제토 주지아로(산업디자인), 첼라두라이(스포츠 경영학), 스타인 로칸(정치학), 마샤 헌던(음악학)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후자 쪽에 해당하는 인물이 많은데, 이것은 책을 펴낸 출판사로서는 일대 모험이다. 미지의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지식의 모험자’들을 광범위한 교양 독자층과 만나게 하는 데 이 책이 성공할 것인가? 그 성공을 위해 각 꼭지에는 ‘용어와 개념 풀이’, ‘더 읽어야 할 책들’, 그리고 각 인물의 논저에서 발췌한 인용문 등이 마련돼 있다. 성공에 대한 전망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각 인물의 대강을 가늠해 보고 독자 스스로 이해를 심화해 나가려는 동기를 촉발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기 촉발의 측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더 읽어야 할 책’에서 우리말 번역서를 소개하지 않은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일부 꼭지에서는 저작 발췌 인용문의 출처가 표시돼 있지 않다.

예컨대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시각과 언어), ‘지식인의 종말’(예문) 등이, 피터 싱어는 ‘동물해방’(인간사랑), ‘실천윤리학’(철학과 현실사), ‘헤겔’(시공사),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세종서적) 등이, 에스핑-앤더슨은 ‘변화하는 복지국가’(인간과 복지) 등이 국내에 소개돼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원서 서지사항만 나와 있다. 필자들이 번역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쉬운 일이다.

외국의 서평을 흉내내어 말해 보면, 모든 대학 도서관과 연구소가 갖추어야 할 책이며, 지식의 수신에 머무르지 않고 발신과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강력 추천’이고, 지식욕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book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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