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스님들 "햇빛 반사에 눈부셔서 기도를 못하겠다"

  • 입력 2003년 6월 27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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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배출한 1200년 역사의 고찰과 국내 대형 건설업체가 '햇빛'을 놓고 8개월째 뜨거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스님들이 사찰 인근에 현대산업개발의 '삼성동 I-PARK'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외벽의 반사 햇빛 때문에 수행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강력 항의를 하고 있는 것.

스님들은 "눈부셔서 기도를 못하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공사 현장을 직접 항의방문 하는 등 갈수록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건물에서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사찰과 건설업체가 대립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

봉은사측은 '삼성동 I-PARK' 아파트 3개동이 사찰에서 140m 떨어진 곳에 46층 높이(155.1m)로 건립되면서 "특히 봄 가을엔 수행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고 사생활까지 그대로 노출된다"며 아파트 외장재 교체와 사생활 보호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봉은사 수행환경 대책위원회 오현승(봉은사 총무과장)씨는 "처음에는 그냥 아파트가 서는구나 했으나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서 비로소 문제점을 발견했다"면서 "작년 10월부터 강남구청과 현대산업개발측에 민원을 제기하고 공사중지와 협상을 요구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만 할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강남구청은 실제 피해사항을 입증해야만 행정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이에 따라 봉은사측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 환경 영향 평가를 의뢰했고 그 결과가 지난 4월에 나왔다.

한양대 건축환경시스템연구실(송규동 교수)은 '삼성동 I-PARK 건립이 봉은사 경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 "시각적 환경은 눈부심 현상을 위주로 평가하는데 일반적으로 광원의 평균휘도가 2만5000㏅/㎡를 초과할 경우 시각작업이 불가능해진다"면서 "I-PARK 아파트의 경우 춘·추분 오후 3시에는 휘도가 최대 39만㏅/㎡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측 관계자는 "(봉은사측 요구는)건물을 잘라내라는 식"이라며 "아무리 자문을 구해봐도 반사되는 햇빛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주장에 법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은사가 제시한 자료에 대해 회사측도 다른 기관에 조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가 이달말 쯤 나올 예정"이라며 "설사 (봉은사측과)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만큼 외장재 교체는 할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봉은사측은 오는 30일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자택 인근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삼성동 I-PARK'는…▼

'삼성동 I-PARK' 아파트는 순수 주거 전용으로 55평~104평형 449세대가 입주하게 된다. 현재 분양권 시세가 55평 15억2천만원, 59평 15억9천만원, 65평 19억5천만원, 73평 21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8차 동시분양에서 평당분양가는 1400만원선이었다.

▼봉은사는…▼

코엑스 북쪽에 자리잡은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에 연희국사가 세운 절로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몇 안 되는 큰 사찰로 불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많이 찾고 있다. 한때 승과를 치르던 승과평 터에는 현재 코엑스 건물이 세워졌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이 곳에서 등과하였다고 알려져있다.

경내에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과 화엄경, 금강경 등이 보존돼 있는 봉은사는 본래 선릉에 있던 것을 조선 명종 때 현위치로 옮겼다.

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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