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精文硏 정윤재교수 盧대통령 발언 이색분석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56분


코멘트
《“언론인들은 '말'과 '글'로 존재를 확인하지만, 대통령은 묵묵히 소처럼 일하다가 연말에나 가서야 겨우 새경을 받는 '머슴'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심비(心碑)에 새겼으면 합니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입이 열리며, 그 때 한마디하면 천하의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정윤재(鄭允在·사진) 교수가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최 개원 25주년 학술대회에서 논문 ‘대통령과 한국의 정치문화’를 통해 언론에 비친 노 대통령 화법의 정치학적 의미를 분석했다.

정 교수는 우선 매스미디어에 비친 노 대통령의 ‘말’이 비판과 혐오의 대상으로 비칠지라도 노 대통령은 일정 ‘정치적 전략’ 아래 그런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 화법은 기존의 정치문화를 파괴하기 위한 도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청와대에서 조찬강연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는 “‘노무현 화법’은 돈과 조직이 빈약한 노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개인적 자산이며 정치도구”라며 “이것은 단순한 말실수나 생각의 모자람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치문화, 파워엘리트 중심주의, 상명하달식 침묵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분석한 ‘노무현 화법’의 특징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직설(straight talks)’을 즐기고 △‘직접 토론(vis-a-vis discussions)’을 선호하며 △“맞습니다. 맞고요”와 같은 유행어로 대표되는 유머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화법은 재야 변호사 시절이나 대통령선거에서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됐다. 대통령 취임 이후 이런 화법은 탈권위주의 효과를 가져왔으나 동시에 국정 혼선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즐기는 ‘직접토론’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대통령의 토론은 학자들의 토론과는 달리 애매하게 끝나서는 안 되며,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하는 ‘정책결정 토론’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언론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대통령이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처럼 언론사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장관이나 비서진이 나서서 정제된 정책의견을 제시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무실역행(務實力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교수는 노 대통령에게 수기(修己)를 주문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사회정치적 성장 과정에서 체득한 문제의식과 막내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기인한 ‘두고 보자’는 식의 심리적 특성으로 인해 마음속에 ‘화’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직자로서 화를 다스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수기이며, 이는 치인(治人) 차원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이 개판이다’ ‘못해먹겠다’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깽판’ ‘쪽수’ ‘패가망신’ 등의 비속어 남발에 대해 정 교수는 “노 대통령이 어휘 선택에 신중하지 않으면 직설은 공해가 될 뿐이며, 유쾌하게 유머를 주고받으며 국사를 논의하는 여유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
화법사례정치적 의도비판
직설“청와대가 감옥 같다” “한국이 개판이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깽판” “쪽수” “패가망신” 등 감정적 언어보수 세력에 의해 공고화된 ‘말 결핍, 말 최소화, 침묵의 문화’를 청산. 말실수 등은 탈권위주의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불필요한 감정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현. 비속어 남발로 국민정서 교육에 위배, 신뢰도 저하
직접토론검사와의 대화, KBS노조 및 언론단체와의 담판, 전국의 시장 군수 구청장 초청특강, 정부부처 공무원 상대 인터넷 조회, 경찰서장, 세무서장과의 대화 ‘상명하달식’ 혹은 ‘침묵이 금이다’는 식의 경직된 문화를 개혁 여러 이익 단체와의 협상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등으로 국가경영 표류, 국가의 통제기능 상실
유머“맞습니다, 맞고요” 등 독특한 말투. “카메라가 있으니 말하는 척해야겠군요” 등 딱딱한 분위기를 깨는 농담 일방적이거나 침묵이 중시되는 권위주의 성향을 벗어나는 정치 문화의 개혁반어법, 농담 등으로 잦은 오해와 국정혼선 초래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