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52…아메 아메 후레 후레(28)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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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난생 처음 써보는 나무젓가락을 요리조리 쳐다보며 도시락을 먹고, 호박씨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사이다를 마시고, 삶은 계란을 유리창에 톡톡 두드려 금이 간 껍질을 하나 하나 벗겨냈다. 아아 배부르다, 이렇게 배가 불룩하게 먹어본 지도 정말 오랜만이네, 더 이상 못 먹겠어, 졸린다, 어젯밤에는 너무 긴장해서 거의 한숨도 못 잤으니까, 아음, 소녀는 하품과 함께 삶은 계란을 꿀꺽 삼켰다. 칙 칙 칙 칙, 기차는 싸리를 넘어뜨리고 버들잎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용산 다음은 경성이다, 경성, 경성은 숭례문이 있는 곳이다, 창덕궁, 창경원도 있고, 하지만 아직 두 시간이나 더 가야 하니까, 야트막한 산, 구불구불 흐르는 강, 어깨를 기대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 들판, 논, 콩밭, 옥수수밭, 고추밭, 사방이 초록, 초록, 초록, 어째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뽀오-, 폭, 폭 포-, 귀 기울여 들어보면 기적 소리는 울릴 때마다 다르다, 칙 칙 칙 칙, 아아, 졸립다, 더는 못 참겠어,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주검처럼 배 위에 두 손을 나란히 모으고 누워 있고, 8월의 햇볕이 감은 눈 위로 쏟아진다. 비 갠 후의 풀 냄새, 강물 소리,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숨소리가 다가온다, 큐큐 파파, 눈을 뜨면, 큐큐 파파, 태양이 비를 증발시키고, 큐큐 파파, 흔들리는 두 다리가 다가온다, 큐큐 파파, 일어나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풀 위에 팔꿈치를 대자, 큐큐 파파, 머리카락이 죽죽 늘어나 날개처럼 펄럭이고, 영남루까지 뻗어 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머리를 거꾸로 늘어뜨리고 둥실둥실 실타래처럼 내려와, 밑으로 밑으로, 비 냄새가 난다, 아니 아닌데, 강이야, 빗방울 모인 강 냄새야, 머리가 물 속으로 처박히는데 물소리가 나지 않는다, 물방울도 튀지 않고, 파문도 퍼지지 않고, 그저 포근히 감싸 안긴 것처럼, 물에, 온몸이, 포대기에 싸여 천천히 흔들리는 것처럼, 자장자장 자는구나 은자동아 금자동아 우리 아기 잠자는데 아무 개도 짖지 마라 멍멍 개야 짖지 마라 꼬꼬달강 울지 마라 나는,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다, 그러나, 들린다, 강을 따라 달리는 그 사람의 숨소리가, 큐큐 파파, 나는 강을 타고 달린다, 그 사람을 쫓아, 큐큐 파파 큐큐 파파…뽀오오오오오오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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