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와 돈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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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의 출발은 화려했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뉴욕 필, 유진 오먼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로열발레 등 쟁쟁한 단체들이 1978년 개관 축하공연에 참가했다. 전설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베를린 필과 함께 훗날 이 무대에 섰다. 미국의 링컨 센터 같은 세계적인 극장을 우리도 가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의 독점적 위치가 흔들린 것은 예술의전당이 생기면서부터. 잠재적 관객이 많은 강남이 지리적 여건상 유리했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의 날개 없는 추락에는 서울시의 관료주의적 경영이라는 ‘내부의 적’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종문화회관 관장 자리는 ‘구청장 대기소’로 불렸다. 민선 구청장이 나오기 이전 서울시의 구청장 인사에서 탈락한 관리들이 잠시 거쳤다 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시설만 동양 최대일 뿐 극장 경영 능력은 없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재단법인화였다.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겨보자는 의도였다. 재단법인이 발족한 것이 1999년 7월 1일이니까 만 4년이 된다. 비슷한 시기에 국립극장도 자율경영을 앞세운 책임운영 기관으로 전환됐다. 문화 발전을 위해 운영되는 ‘공공극장’을 민영화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문화를 돈과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가의 여부가 뜨거운 논란이 됐다. 공공극장이 이윤 추구에 매달리게 되면 국가 예술 수준의 향상과 같은 장기적이고 공익적인 기능이 축소된다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세금 먹는 하마’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바뀌고 난 뒤 나타난 변화는 극장 이곳저곳에 식당 매점이 들어섰다는 것뿐이다. 고급문화를 선보이는 극장이라면 문화적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임대 수입에 급급하는 것은 오히려 관객을 내쫓는 결과를 부른다. 이런 식의 민영화는 지지를 얻기 어렵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의 운영방식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내년 재정자립도의 목표치를 32.4%, 2005년은 42.6%로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극장 운영은 공공성과 수익성 가운데 수익성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마련이다. 외국도 20%선을 넘지 않고 있다. 문화적 상징이자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해외 유수의 극장들과 비교하면 우리 극장은 너무 초라한 느낌이다. 경제와 문화적 역량의 차이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적 경영능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선 문화 분야에서라도 선조들의 조화와 중용의 철학을 배울 일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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