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차지완/집값 언제든 다시 뛸 수 있다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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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재건축 동의서를 안 써주면 ‘역적’ 취급하는 조합원들 등쌀에 할 수 없이 동의서를 써 줬습니다. 7월에 새 법이 발효되면 재건축은 2, 3년 연기된다고 강조하더군요.”

경기 과천시에 사는 K씨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e메일을 본보 경제부 부동산팀에 보냈다. A4 용지 5장 분량의 장문의 편지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과천 ○단지 주민이다. 재건축추진위원회에서 최근 A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고 조합인가를 받았다. A사는 대형 평형으로 지으면 분양 수입금이 많아져 조합원의 추가 부담금이 줄어든다고 설득한다. 조합도 대형 평형의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나중에 아파트 값이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정말 누가 투기꾼인지 헷갈린다.’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이 발표된 뒤 전국의 수많은 아파트 입주자가 재건축사업 동의서를 썼다. 건설회사의 재건축 수주 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달 들어 기자의 ‘받은 편지함’에는 수주 관련 보도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런 이유로 수주 담당 임직원은 거의 매일 ‘출장 중’이다. 전화를 걸면 첫마디가 ‘여기 부산이에요’ ‘대구에 내려와 있어요’ 등이다. 다음날 수주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걸까.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첫째 이유로 꼽힌다. 이 법이 시행되면 재건축사업을 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진다. 건설회사가 수주전(戰)에 뛰어든 것은 ‘연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공사를 한 번 선정하면 바꾸기 힘든 게 한국적 ‘관행’이다.

여기에 5·23 주택시장 안정대책도 불을 지폈다. 재건축 아파트의 일반 분양 시점을 ‘80% 시공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조합은 사업의 ‘급가속 페달’을 밟아야 했다. 사업을 서두르면 기존 법을 적용받아 과거처럼 분양 수입으로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5·23 대책이 발표된 뒤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찾은 것은 국민 다수(多數)를 위해 환영할 일이다. 정책 담당자들도 이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K씨의 증언대로 시장 바닥 상황은 다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주에 들어가는 비용은 증가하고 분양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집값이 언제든 다시 뛸 수 있다는 ‘불씨’가 시장 깊숙한 곳에서 이글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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