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유통혁명 다국적 발주 본격화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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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월마트 아시아담당 바이어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각국 월마트 매장에서 팔 물건을 찾는 길이었다. 여러 제품 가운데 테니스공 제조업체인 낫소가 내놓은 ‘펀볼’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편하게 보였다. 가격도 쌌다. 낫소는 버려지는 재료로 펀볼을 만들어 공임(工賃)만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바이어는 50만달러 계약을 했다. 세계 월마트 매장에 한국 낫소의 제품이 깔리는 순간이었다.》

한국 할인점들의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다국적 발주)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홈플러스, 까르푸, 월마트 등 다국적 할인점들이 한국 상품 가운데 우수 상품을 세계 자사(自社) 매장에 공급하는 ‘수출기지’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토종 할인점들은 최근 해외에 바이어를 보내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세계화’를 시작했다. 대형 할인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의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사온다=신세계 이마트는 올해 초 중국 상품을 발굴해 조달하는 임무를 띤 바이어 2명을 중국 현지로 발령냈다. 토종 할인점으로는 처음 시도된 이 중국 소싱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3월에 시험삼아 중국산 목욕용품 1만개를 들여와 2주 만에 다 팔았다. 가격이 국산 제품(1만3900원)의 절반가량인 7900원에 불과하고 품질도 괜찮았다. 이마트는 13일부터 이 목욕용품을 2만개 추가로 들여와 팔고 있다.

롯데마트는 이르면 연말 글로벌 소싱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달 전문 컨설팅업체인 미국 데이몬사와 계약을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7월 초순에는 5명 안팎의 전담 태스크포스도 꾸려진다.

토종 할인점보다 먼저 글로벌 소싱을 시작한 한국의 외국계 할인점들은 최근 규모를 늘리고 있다.

프랑스계 할인점인 한국까르푸는 세계 31개국에 진출한 매장 네트워크를 통해 싸고 질 좋은 물품을 선별, 한국 매장에 들여오고 있다. 다른 할인점에는 없는 이색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까르푸는 현재 200여종인 이런 제품들의 비중을 더 늘려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를 꾀한다는 방침.

▽할인점을 발판으로 세계로 간다=할인점이 외국 제품을 수입하는 ‘일방통로’는 아니다. 다국적 할인점은 좋은 한국산 상품을 선별해 해외 매장으로 보내고 있다.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올가을 영국과 아시아, 동유럽 등에 산재한 2000여개 매장에서 경기도산 배를 파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 법인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2001년 영국에서 연 ‘경기도산 배 시식회’에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3년부터 한국에서 소싱을 시작한 월마트도 각국 월마트 매장에 깔리는 한국산 제품을 계속 늘리고 있다. 세계 월마트망을 타고 수출된 한국 제품은 93년 1억7100만달러어치에서 올해는 5억달러어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늘고 있다.

월마트는 특히 지난해 2월 소싱 전문회사인 ‘월마트 글로벌 프로큐어먼트’의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세계 21곳에서 지사를 운영 중인데 각국 월마트 매장에 공급하는 상품을 발굴하는 게 임무다.

이 회사 조전희 한국지사장은 “월마트가 한국 시장에 그만큼 소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라며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까르푸도 최근 한국산 물품을 세계 자사 매장에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파트리스 행슈발 한국까르푸 마케팅 상품구매 담당 상무는 “아직까지 한국산 제품의 수출 실적은 미미하다”면서도 “김치, 전자제품 등 한국산 상품을 중국, 일본 내 까르푸 매장에 수출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의미와 파장=할인점들은 글로벌 소싱을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꼽고 있다. 이경상 신세계 부사장은 “글로벌 소싱은 소리 없는 유통혁명”이라며 “할인점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고 분석했다.

할인점에 납품하는 한국 중소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한 예로 세계 10국에 4727개의 매장을 가진 월마트 망을 타면 단숨에 매출액이 4,5배씩 치솟는다.

월마트 글로벌 프로큐어먼트 한국지사의 조 지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물건은 잘 만드는 데 프리젠테이션과 세일즈가 약하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박용기자 parky@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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