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351…아메 아메 후레 후레(27)

  • 입력 2003년 6월 2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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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에는 못 나가지.”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영국이 적국이라서 그렇죠?”

“잘 알고 있구나.”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좌석에 덮여 있는 하얀 천의 주름을 펴듯 쓰다듬고, 다시 생긴 주름을 펴면서 소녀의 두 손이 가지런히 얹혀 있는 허벅지를 슬쩍 쳐다보고는 가슴, 목, 얼굴로 눈길을 옮겼다.

“런던에 못 나가면 그 다음 올림픽에는 반드시 출전할 거예요. 우곤씨는 형보다 빠른 유망주니까요.”

“거 대단히 열심이로구나” 볼을 오므리고 연기를 빨아들인 남자의 표정이 무슨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돈 모으면 라디오 사서 올림픽중계 듣고 싶어요. 라디오, 얼마 정도 하나요?”

“싼 거는, 8엔 정도면 사겠지. 아무튼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하는 데 힘이 되지.” 남자는 후 후 하고 기차처럼 연기를 뿜어내 고리를 만들고는 한쪽 볼을 실룩이며 미소지었다.

“정말은,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어요. 연도에 나가서 힘내라고 소리 질러보고 싶어요. 하지만 외국에 가려면 돈이 무척 많이 들겠죠.”

소녀는 자신이 평소처럼 조잘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불안이 한없이 부풀 것 같았다. 가족 얘기,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밀양 얘기, 소녀는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조잘거렸다.

대전에는 정각 12시46분에 도착했다. 남자는 창문으로 오른팔을 내밀고 1엔짜리 종이돈을 팔락 팔락 흔들면서 “도시락! 도시락!”하고 외쳤다. 그리고 창문 아래로 달려온 검은 셔츠 남자아이에게서 도시락과 호박씨와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샀다.

“도시락은 단연 만주가 최고지. 내일 저녁은 웅악성(熊岳城)에 있는 생선초밥집에서 먹자. 요양(遼陽)도 맛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좀 이를 거야. 안동 다음부터는 만주 철돈데, 도시락하고 같이 중국차를 조그만 자기병에 담아 판다. 뚜껑에다 이렇게 따라서 마시는데, 그게 또 맛이 그만이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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