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공직사회 ‘정치軍官’

  • 입력 2003년 6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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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요즘 새로 온 30대 초반의 정책보좌관에 적잖은 신경을 쓴다. 국회의원 비서 출신인 그는 경제 분야 경험이 전혀 없다. 하지만 바로 서기관으로 ‘날아와’ 별도 사무실에서 일한다. 한 간부는 “정책이 ‘대통령 코드’에 맞는지를 청와대에 보고하는 일이 주요 업무”라며 “일은 모르고 정치 성향만 강한 ‘젊은 친구’를 왜 보내 미묘한 분위기를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논란을 빚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부 부처 내 개혁주체조직 구축’ 발언에 대한 공직사회의 평가도 차가운 편이다. 경제 관료들의 육성(肉聲)을 그대로 옮겨보자.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물갈이 하겠다는 말 아니냐.”

“괜히 이런 바람에 휩쓸려봐야 몸만 버린다. 나중에 경력에 흠만 남는다.”

“이런 아마추어 방식 개혁은 부작용이 훨씬 크다.”

‘개혁주체 세력론’에 긍정하는 공무원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경제부처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전한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한다. 특히 ‘정치군관(軍官)’과 같은 폐해를 걱정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된 독소(獨蘇) 전쟁의 개전 초 전황(戰況)은 독일의 압도적 우위였다. 이것이 1942∼1943년을 고비로 역전됐다.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지만 군에 대한 정치적 이념적 간섭의 유무를 빼놓을 수 없다.

소련은 1930년대 후반 일선 소대급까지 정치군관을 배치했다. 이들이 당의 노선을 어긴다고 판단한 장교들은 숙청됐다. 군의 독립성 말살과 이념 과잉은 전쟁 초기 소련의 무기력한 패주(敗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값비싼 경험을 치른 뒤 소련은 모든 하급부대에서 정치지도위원 제도를 폐지했다. 지휘관에 대한 정치군관의 간섭권이 박탈됐고 자율권이 높아졌다. 이런 변화가 국민들의 애국심, 전쟁영웅인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리더십 등과 겹치면서 전세(戰勢)를 돌려놓았다.

우리 헌법 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못 박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89년 12월 “공무원은 특정인이나 계파의 부분이익에 봉사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뒤늦게 의미를 축소했지만 “대통령에게 줄을 서라”는 말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제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

노 대통령의 생각이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몇몇 서기관이나 사무관이 대통령과 ‘직거래’한다는 것만으로도 조직은 동요될 수 있다. 장차관이나 실국장이 부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코미디’도 나타날 수 있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개혁인지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다.

공직사회는 집권세력과의 코드보다는 구체적 정책판단과 수립, 집행능력이 더 중요하다. 업무역량과 자세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대통령이 할 일은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외풍(外風)에 신경 안 쓰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조직을 뒤흔들거나 ‘정치군관’을 만드는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

독일의 철혈(鐵血)재상 비스마르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배운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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