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품전 연 在美 설치작가 서도호

  • 입력 2003년 6월 24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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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5cm 합성수지 인형 18만개가 유리판을 지탱하고 있는 작품 ‘FLOOR’. 유리판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인형들이 수없이 모여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진제공 서도호씨
키 5cm 합성수지 인형 18만개가 유리판을 지탱하고 있는 작품 ‘FLOOR’. 유리판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인형들이 수없이 모여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진제공 서도호씨

서도호(41)씨 작품감상의 핵심은 ‘눈높이’와 ‘거리’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는 ’DOORMAT(2m40㎝×1m20㎝)‘는 연두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Welcome'이라고 적힌 깔개다. 시선을 내려 자세히 보니, 키 2.5㎝ 작은 고무인형 수만여개가 만세를 부르듯 도열해 있다.

이어 양탄자처럼 바닥에 깔려있는 유리 판을 아무 생각없이 걷게 되는데, 이 역시 그의 작품 ‘FLOOR'다. 판 아래에는 키 5cm 합성수지 인형 18만개가 손바닥을 위로 하고 도열해 있다. 손 대면 부러질 것 같은 인형들이 수없이 모여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당혹감에 문득, 시선을 들면, 이번에는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벽지(작품명 ’WHO AM WE?’)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보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지름 0.4㎜ 작은 원안의 주인공들은 교복차림으로 수줍음, 치기, 기대와 두려움이 엇갈린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3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고교 졸업 앨범을 모아 장당 60㎝×90㎝ 크기 벽지로 만들어 이번에 600여장을 붙였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무려 20여만명의 서로 다른 얼굴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어매트’와 ‘플로어’에서 아래로 향했던 시선은 벽지의 주인공들과는 수평으로 만난다. 이처럼 우리의 눈높이와 거리는 그의 작품과 만나기 위한 유의미한 수단이다.

이름 군번 종교 혈액형등이 적혀 있는 미군 인식표 7만여개를 붙여 만든 ‘SOME/ONE'. 타원형(2.5X5cm)쇠붙이를 촘촘히 붙인 이 작품은 생과 사의 숙명에 갇혀 어쩔수 없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훈구기자

아래에서 수평으로, 멀리서 가까이로 천천히 작품에 몰입하는 동안 문득, 머릿 속에선 ‘관계’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서로 다른 거리와 시선 앞에서 또렷해지고 희미해지는 대상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인간이란, 서로의 거리 조절이라는 시행착오 속에서 사랑과 상처를 주고 받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FLOOR’를 지나 만나는 ‘Some/One’은 2m15㎝ 높이 장중함과 재료로 쓰인 금속이 주는 차가움의 긴장감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돼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흡사 갑옷을 세워놓은 듯한 철 작업이다.

자세히 보니, 재료로 쓰인 것은 타원형(2.5×5㎝)의 미군 인식표(認識票). 작가는 무려 7만여개를 몸체와 바닥에 촘촘히 붙였다. 이름, 군번, 종교, 혈액형이 적혀 한 인간의 사회 문화 생물학적 요소들이 집적되어 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인식표의 주인공들은 이미 이 땅에 없다. 결국 인간은 언젠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공(空)’에 대한 자각부터 사실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저렇듯 단단한 외피를 뒤집어 쓰고 살아야 하는 생의 숙명 같은 것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막바지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작가와 만나면서, 그에게는 삶보다 작품이 더 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는 작품을 먼저 고민하고 뒤에 삶을 고민하는 작가적 유전자가 뿌리 박혀 있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삶에서 극적인 체험들이었던 군 생활이나 미국 유학 시절 겪은 온갖 문화적 자극들을 언어 이전에 공간과 시각으로 사유하는 태생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동양화로 석사학위까지 받고 도미해 다시 학부에서 서양화로 전공을 바꾸었다가 결국 대학원에서 조소를 선택한 미시적 우회(迂廻)와 동양에서 서양으로의 거시적 공간 이동 체험은 그로 하여금 ‘소통’ ‘넘나듦’ ‘관계’라는 화두에 천착하도록 했다. 그런 이력들이 집단과 개인, 부분과 전체, 거시와 미시와 같은 이원적 요소를 한 무더기로 버무려 다양한 작품으로 물화(物化)시키도록 이끌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겸손과 자기 고집, 몰입과 관조적 사유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는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수 많은 우연적 관계적 요소들의 집합이며, 모두의 공간을 위해서는 각자의 공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활동이란 결국,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발견이라고 말하는 그도 벌써 불혹을 넘기고 있었다.

▲서도호는…

현재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인 작가다.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한 것을 비롯, 뉴욕 휘트니 미술관 필립 모리스 분관(2001), 뉴욕 현대미술관(2001)등에서 전시를 했다.

이어 지난해 가진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개인전에서는 갤러리 사상 최대 관객 4만6000여명이 몰려 들기도 했다. 이번 한국에서 갖는 첫 번째 개인전에는 그동안 호평을 받았던 4점과 함께 두 점의 최근작(2003)이 선보인다.

병사가 비행기에서 내려 착지에 성공한 직후, 낙하산 줄을 당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PARATROOPER-I’나 ‘FLOOR’의 확대판인 ‘KARMA’같은 작품을 통해 그의 화두인 소통과 관계라는 주제가 한층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도미한 그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국화단의 거목인 산정 서세옥화백의 장남이다. 28일∼9월7일까지 아트선재센터. 02-733-8945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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