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성린/'밀어붙이기 파업' 이제 그만

  • 입력 2003년 6월 2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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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조직폭력배들의 세상을 방불케 한다. 많은 국민과 영세사업자들이 조폭들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들에게 대항할 힘도 없고 어디 한 군데 호소할 데도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국민과 기업하는 사람들은 노조의 조폭식 행동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그들이 길을 막고 사업장을 막고 불법 폭력 파업을 해도 대항할 힘도, 호소할 데도 없는 것이다.

▼경제 살아야 노조도 사는 법 ▼

불행히도 현재 노조들의 밀어붙이기식 행동은 정부가 초래한 측면이 많다. DJ정부 당시 정부가 먼저 나서 주5일 근무제를 강요하고, 참여정부 들어와 대통령이 노조를 방문해 이미 체결된 계약을 파기하는가 하면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세력 균형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노조들은 불법 파업의 빌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두산중공업 노조, 화물연대, 철도노조 등의 파업이 잇따랐지만 모두 노조의 요구조건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선에서 무마됐다. 최근엔 조흥은행 노조 파업이 정부의 강력 대처 엄포 속에서 일시적으로 봉합됐지만 결국 노조의 요구사항이 거의 대부분 수용됐다. 그 결과 밀어붙이면 밀리는 정부를 우습게 아는 수많은 노조의 ‘줄 파업’이 예정돼 있을 뿐이다. 지하철노조, 철도노조, 시내버스노조, 택시노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총파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건의료노조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노조가 조합원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복지향상을 보장받기 위해 협상하거나 투쟁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기업과 국가경제가 파탄이 나든 말든 자신들의 몫만 챙기고 같이 죽어도 좋다는 식의 불법 파업을 강행하는 것은 공멸을 자초하는 길이다. 이런 파업이 단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도 모르나 결국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 상실과 해외 이전, 기업 및 국가의 신용도 하락, 외국인 투자 감소 등으로 경기 침체를 야기하고, 마침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해 노사 양쪽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피해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급기야 엊그제엔 참다 못한 재계에서 더 이상 불법 폭력 파업 사태가 계속될 경우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사업장을 외국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하고 나섰다.

그러면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노사갈등이란 것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만성질환과 같은 것이어서 단칼에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질환이 도질 때마다 절망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기업주들은 평소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노사관계를 투자결정, 자금조달, 마케팅보다 중요시해야 한다. 또 무엇보다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해 파업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노조 또한 조합원의 복지향상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해진 법 테두리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소속 노조원들의 이해와 관련이 없는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일삼는 관행은 지양해야 한다. 전교조가 참교육과 관련이 없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동조해 교육 현장을 떠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노조 지도자들은 아직 계급투쟁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구태의연한 리더십을 지양하고 국제감각과 유연한 협상력을 갖춘 21세기형 리더십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 정부 섣부른 간여 ‘줄 파업’ 불러 ▼

마지막으로 정부는 노사갈등에 일일이 간여하지 말고 노사가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파업이 초래할 단기적 경기 침체를 우려해 일일이 간섭하다 보면 노(勞)는 사(使)를 무시하고 정(政)과만 대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노사갈등을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노사갈등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공정한 법과 제도를 세우고 이를 엄격히 중립적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사가 해결할 수 없을 경우에 한해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강제적 중재를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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