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특검중단, 政治에 손든 法治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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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특검이 중도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일어났던 정부, 현대, 북한 사이의 검은 커넥션에 대한 진실 규명은 상당부분 차후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또한 특검 기간 연장 불허로 촉발된 여야간 대립과 사회적 분열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전망이다.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멈춰진 진실규명 혼란 더 키워 ▼

노 대통령의 특검 연장 거부는 앞으로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무엇보다도 특별검사제도 자체를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특검은 기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인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특검의 활동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특검이 대부분의 설치 목적을 달성했다거나, 현대가 박지원씨에게 지원했다는 거액은 대북송금과 관련이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앞선 판단이다. 더욱이 특검 연장 반대가 호남 및 진보 등 지지세력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 그렇다. 특검의 활동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좌우되면 특검제마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고, 한국 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둘째, 미완의 진실 규명으로 특검이 종료됨에 따라 진실 규명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가열되고 있다. 야당과 다수 국민은 아직 대북송금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인지, 아니면 남북경협의 대가인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을 통한 정부의 현대 지원은 대북송금과 무관한 것인가. 현대가 박지원씨에게 지원했다는 거액은 정부, 현대, 북한을 잇는 불투명한 고리와 관련이 없는 것인가. 현재 국회의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이 모든 것을 연계해서 보아야 대북 송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 큰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검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팽팽한 의견대립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특검이 남북관계를 해치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특검이 정상적인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한다. 이와 같이 논쟁적 이슈에 대한 진실 규명을 뒤로 미룸으로써 특검 연장 거부는 그 자체로 새로운 분열과 대립의 씨앗이 되고 있다. 갈등이 조정되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고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서 남겨진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하거나 새로운 특검을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특검법이 여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과하기란 힘들 것이며, 설사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특검이 해결하지 못한 의혹들은 검찰 수사로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검찰로서도 이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적극적인 생각과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에 민주화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검찰 독립을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검찰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이번에도 과거와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검찰은 회복할 수 없는 신뢰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다시 갈림길에 서는 검찰 ▼

정치세력이나 이익집단 모두가 눈앞의 자기이익 추구에만 골몰해 있다. 대통령도 정치적 손익 계산에 분주하다. 게임의 규칙에 대한 합의와 엄정한 집행이 없는 가운데 ‘힘이 곧 정의’인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 진리와 정의, 법과 원칙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분열과 대립 속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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