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에 목 매다 앵벌이 신세로

  • 입력 2003년 6월 23일 14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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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헤어지고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됐습니다. 돌아갈 집도 없고 그냥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던 50대 중반의 K씨는 지난 2000년 겨울 강원도 여행 중 우연히 (주)강원랜드를 찾았다가 도박에 빠져 아직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10억원 가량을 잃고 이혼을 당하는등 가족에게도 버림 받았으나 좀처럼 도박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30대의 S씨도 2001년 여름휴가 때 이곳에 들렀다가 약간의 돈을 딴 뒤 그 맛을 잊지 못해 도박중독자 신세가 됐다.

S씨는 7년여 직장생활 동안 모은 예금과 전세금, 자동차 등 1억5000만원을 모두 날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앵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초보자에게 게임요령을 가르쳐주거나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하루에 한 끼도 못먹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사채업을 하는 L씨는 도박중독 증세 때문에 강원랜드를 떠나지 못하고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5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대부분 도박 때문에 빚을 지고 가정과 직장을 잃은 뒤 이곳을 떠돌며 범죄나 자살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3일에는 도박 빚에 시달리던 오모씨(25·정선군 고한읍)가 승용차 안에서 몸에 시너를 뿌려 분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오씨는 카지노를 드나들다 1억원 가량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에 따라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주)강원랜드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임시로 문을 연 것은 지난 2000년 10월.

이후 2년6개월만인 지난 3월 슬롯머신 1100대, 테이블 100대, 면적 6124평, 호텔 객실 477개를 갖춘 메머드급 카지노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임시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480대, 테이블 30대 만으로도 4694억원(총 배팅액 기준 추정액 2조1640억원)의 매출이익을 올렸다.

메인 카지도가 문을 연 올해는 1조원(총 배팅액 기준 추정액 3조7000억원)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경기는 점점 활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반대로 도박산업은 나날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도박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13조9499억원으로 2001년 10조7281억원 보다 30% 늘었다.

또 경마, 경륜, 경정, 강원랜드 카지노에 참여한 연간 이용객수(복권 제외)는 2315만8천명으로 전년보다 21.5% 늘어났다.

20세 이상 성인인구들이 연간 40만5천원을 도박비용으로 쓴 셈.

그러나 도박장의 매출이 오를수록 이에 따른 폐해도 독버섯처럼 번져 가산탕진, 가정해체, 폭력-도난 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천범(徐千範·44)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정부가 앞장서서 로또복권, 카지노, 경륜장 등 새로운 도박 수요를 만들고 있다”며 “도박산업이 더 이상 커질 수 없도록 민관이 참여하는 ‘사행산업감독위원회’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규제해야 된다”고 말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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