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상임위 밥그릇싸움 언제까지

  • 입력 2003년 6월 22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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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임시국회가 여야의 자리싸움으로 또다시 소득없이 끝날 상황에 처했다. 예결위원장을 어느 당이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갈등 때문이다. 이 문제로 이번 임시국회의 우선 처리 안건이었던 4조1775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 처리가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회기 마지막 날인 30일 전에 극적인 타결을 이룬다 해도 추경안 심의는 졸속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 정쟁(政爭)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 재연된 이 같은 ‘구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자리다툼을 계속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지난해 양당 총무의 합의서를 근거로 “한나라당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지난해 합의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이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각각 9 대 8 대 2로 나누되 예결위원장은 민주당이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이에 대해 “지난해 말 민주당 의원의 이탈 등으로 의석 수가 변한 만큼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예결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사정 변경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 총무는 “민주당이 협상을 거부하면 30일 국회법에 따라 자유투표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직 배분을 사후 논란의 소지가 많은 총무간의 합의에 맡긴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여야 대표가 철석같이 합의한 약속도 뒤집는 판에 법적 근거도 없이 A4용지 한 장에 쓴 총무 합의서가 무슨 구속력을 갖겠느냐”고 말했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은 의원들의 자유투표로 정한다는 규정만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13대 국회부터 그때그때 총무 합의에 따라 대략 의석 수 비율로 국회직을 배분해 왔다. 그러나 구속력이 없다 보니 늘 흥정과 시비가 뒤따랐다.

미국은 200여년 전에 다수당이 상임위는 물론이고 각종 소위 위원장직도 모두 차지한다는 원칙을 마련한 뒤 이 문제로 국회가 파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 2001년 초 상원 내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 비율은 50 대 50이었으나 공화당의 제임스 제퍼즈(버몬트주) 상원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석 비율은 49(공화) 대 50(민주) 대 1(무소속)로 바뀌었다. 20세기 들어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지만 공화당은 이의 없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민주당에 넘겼다.

우리 국회도 이제 국회직 배분을 법규나 관행으로 명백히 해 놓을 때가 됐다고 본다.

이승헌 정치부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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