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 "기업투자, 정부 하기에 달렸다"

  • 입력 2003년 6월 22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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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具本茂·58·사진) LG그룹 회장은 “정부가 기업의 사기를 북돋아야 기업들도 투자를 많이 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기업활동을 좀 더 격려하기를 주문했다. 구 회장은 또 “한두 사람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천재보다는 훌륭한 최고경영자(CEO)를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LG칼텍스정유 주주총회에 참석한 뒤 21일 런던발 인천행 KE908편에서 기자와 만나 “기업들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신바람이 나서 투자를 많이 할 텐데 요즘 이런 것이 좀 부족한 것 같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VIP를 위한 별도탑승구를 마다하고 일반탑승구를 통과한 구 회장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모습이었다. 최근 몇년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자를 만나자 자연스럽게 대화에 응했다. 그는 기내에서 약 30여분간 기업과 정부 관계, LG그룹의 미래, 경제현안 등에 대해 털어놓았다.

구 회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해야 한다”면서 “노조가 깃발 들고 나서면 기업들이 투자를 할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LG그룹의 미래에 대해서는 “1년 정도 후면 구-허씨 양대 창업가문간 개별 경영체제로 갈 것”이라면서 “그러나 시너지 효과를 위해 구-허씨간 협력을 유지하면서 10% 정도의 사업은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구 회장과의 일문일답.

―요즘 최대 관심사는….

“핵심인재 유치와 연구개발(R&D)이다.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인재들을 발굴할 것이다. 그러나 한두 사람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천재는 따돌림 당하기 쉽고 사내에 위화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보다는 훌륭한 CEO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내다보고 경영을 잘하는 CEO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재벌개혁’과 함께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하고 있는데 LG는 그런 면에서 앞서가는 것 같다.

“지주회사 전환이 순조로워 일을 많이 덜었다. 나는 CEO들을 독려해 이익을 많이 내게 하고 배당을 많이 받으면 된다. 앞으로는 LG 브랜드 사용료도 받을 것이다.”

―LG가 LG필립스LCD, LG칼텍스정유 등 외국 기업과 합작을 잘 하는 비결은….

“파트너를 존중하고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구-허씨 협력은 물론 외국기업과도 파트너십을 유지해왔다. 회계가 투명하지 않다면 어느 외국기업이 협력하려 하겠는가.”

―요즘 노사관계가 불안하다.

“LG도 1988년 대규모 노사분규를 겪었다. 이것이 좋은 경험이 되어 노사협력이 잘 되고 있다. 노조란 원래 성과급 주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LG노조는 최근 연구개발을 잘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라고 조합비를 내놓았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중국이 3∼4년 내에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많다.

“중국인들의 생산성은 한국의 85%정도지만 임금은 8분의 1정도다. 노조들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저가 제품은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저가제품은 중국으로 이전하고 고부가 첨단기술 제품은 한국에서 할 거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화통하신 분 같더라. 선거유세를 보고는 5월 미국 방문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하시더라. 현장을 찾아가 현실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내달쯤 중국에 가시면 LG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전국을 ‘도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방중 때 부른다면 같이 가겠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보는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국내외 현장 경영을 중시하시는 것 같다.

“카자흐스탄과 노르웨이를 가보니 우리 직원들이 많이 고생하더라. 이 사람들을 위해 내가 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많이 다니겠다. 특히 오지를 찾아가 격려하겠다.”

런던발 인천행 기내에서〓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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