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48…아메 아메 후레 후레(24)

  • 입력 2003년 6월 22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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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조금이라도 잘 보이게 하려고 고개를 높이 처들고 두 팔에 잔뜩 힘을 주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저씨가 걱정하고 있을 텐데, 어서 가야지 안 그러면 내가 못 탔는 줄 알고 다음 역에서 내릴지도 몰라, 다음 역은 원동이지, 원동에 도착하면 일단 내려서 이등실 있는 데로 뛰어가자, 아니지 그 때까지 그냥 참고만 있으면 땀으로 범벅이 될 거야,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어떻게든 가야지, 소녀는 남자들의 가슴과 등과 팔과 배낭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

간신히 차량 끝에 다다라서 이번에는 적당히 힘주어 문을 열었다. 차량과 차량 사이에도 짐과 사람들이 넘쳐났다. 화장실 문에 기대 있는 남자가 하도 의붓아버지를 닮아서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남자는 몹시 따분하고 졸린 표정으로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하양과 검정이 뒤섞인 수염이 삐죽삐죽 돋아 있는 뺨을 오징어를 쥔 손으로 긁었다. 얼굴이 이렇게 닮았으니까 목소리도 똑같을 거야, 목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네, 아니야, 그 남자하고 똑같은 목소리 사양하겠어, 소녀는 가죽 트렁크를 지나 이등실 문을 열었다.

소녀는 삼등과 이등의 차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등은 나무 좌석인데 2등은 좌석에 하얀 천이 씌어 있고 서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국방색 국민복을 입은 사오십 대 일본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또 그렇게 앞만 보고 가는구나. 사방을 잘 둘러봐야지”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뒤돌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못탔는 줄 알았다. 넌 참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애로구나” 남자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뭘 그렇게 서 있느냐, 여기 앉아. 경치가 잘 보이는 창가가 좋겠지”

소녀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 뽀∼하고 긴 기적이 울리고 칙 칙, 칙 칙, 덜컹, 덜커덩 덜컥 하고 기차가 철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소녀는 강물에 비친 열차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도 그 강이 늘 고무줄 놀이를 하는 밀양강이라는 것을 모른다. 고개를 들고 있으면 영남루가 보일 텐데, 강물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철교를 다 건너서도 기차는 한탄하듯 길게 기적을 울렸다, 뽀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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