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분신(焚身)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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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33세의 이란인 반체제 인사 아바스 아미니가 자신의 눈 입 귀를 실로 꿰맨 끔찍한 모습으로 영국의 런던 거리에 나타났다. 영국인들은 이후 일주일 동안 입을 네 바늘, 양쪽 눈과 귀를 각각 한 바늘씩 꿰맨 외국인의 고통스러운 단식투쟁을 지켜봐야 했다. 2년 전 영국에 입국한 아미니는 최근 영국 정부가 그를 이란으로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극한투쟁에 돌입했다. 아미니는 변호인을 통해 영국 정부가 장기 체류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을 것이며, 어떤 말도 듣지 않고, 누가 와도 쳐다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몸을 꿰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주일 뒤 영국 정부가 손을 들었고 아미니는 꿈에도 그리던 자유인의 지위를 얻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이란인의 ‘투쟁’이 유럽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는 분신이다. 18일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3명의 이란인이 심지어 경찰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분신을 기도해 여자 1명이 숨졌다. 이란인들은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스위스 베른에서도 분신을 시도해 유럽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란인들은 프랑스 경찰이 이란 망명 반체제단체 ‘인민 무자헤딘’의 거점을 기습해 수십 명의 핵심 인사들을 체포하자 분신을 시작했다.

▷손가락을 조금만 베여도 아파서 쩔쩔매는 보통 사람이 살을 꿰매고 몸에 불을 지르는 이란인들의 극한투쟁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지내는 고통이 극심하고, 반정부 활동 또한 절실할 수 있지만 어떻게 자기 몸까지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이란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국에 송환되는 것이 죽음보다 싫고, 몸을 바쳐서라도 반정부 운동을 하려는 이란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지금 이란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흘째 계속되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에는 ‘검정보다 어두운 색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었다. 더 잃을 것도, 더 이상 좌절할 수도 없는 불행한 삶을 지칭한다고 한다. 외신은 지금 이란 젊은이들이 바로 수천년 전 그들의 선조들이 묘사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란 젊은이들은 97년 대선에서 모하마드 하타미를 압도적으로 밀어 그를 대통령이 되게 했으나 지금까지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분개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라크전 이후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동원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미국까지 고려하면 이란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것 같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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